제27집: 가야 할 탕감길 1969년 12월 2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0 Search Speeches

능동적인 자신이 되자

진실된 가치를 역사시대에 얼마나 남겨 왔느냐? 또 그 진실된 가치가 역사과정을 통해서 얼마나 남아질 것이냐를 염려하면서 거두어진 가치를 잊어버리고 지금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무리 어려운 환경의 고빗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가치를 무색하게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가치의 내용을 중심삼고 가치의 기준을 높이하였습니다. 그 가치를 떨어 뜨리고 파탄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 자신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역사과정에서 `이것만은 내가 틀림없이 대가를 치렀다. 삼천만 민중아, 이것만은 나를 본받아라. 내 형제야, 이것만은 본받아라. 내 부모여, 이것만은 분명하다'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었습니까? 반대하는 사탄도 이것만은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사탄도 `예, 그렇습니다', 또한 부모도 `오냐', 민족도 `옳습니다. 그렇고 말고요'라고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분석 비판 능력을 갖지 못하였다 할진대는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겠다고 부르짖는 그 자체가 허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경거망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능동적인 것이 아니라 피동적인 것입니다. 피동적인 존재는 완전한 수확을 거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수확의 결과는 볼 수 있으되 주인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피동적인 인연을 거쳐서 남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능동적인 인연을 통해서 종교의 그 핵심 주류를 통해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피동적인 생명의 인연을 가지고 있고, 피동적인 대가를 가치를 추구하고 있고, 또 피동적인 대가를 치르면서 살고 있는 서글픈 자신임을 발견할 때 그 부끄러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부끄러움을 가릴 수조차 없는 부족한 자신인 것을 발견하고 통곡할 수 있는 자신이 되지 않고는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서 제시하는 회개가 그러한 과정에서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내 개인이 되어야겠습니다.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아내, 그럴 수 있는 남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남성과 여성이 만나 가지고 한 가정을 구성하는 그날, 하늘은 우리에게 더 큰 기대를 걸 것입니다.

오늘날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합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러한 제시된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얼마나 심각했느냐? 자기 자신들의 생활 문제를 생각하는 것보다 역사적인 사명과 앞으로의 천운과 승리의 박자를 맞추는데 있어서 얼마나 심각했느냐? 우리는 그럴 수 있는 부부의 인연을 존중시하면서, 그럴 수 있는 인간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인연의 세계를 창건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일대에서 끝이 안 나면 후계자를 세워서라도 상속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엄청난 역사적인 숙명의 과업을 책임지고 준비하여 고스란히 상속시켜 주는 참된 부모의 모습으로서 어떻게 등장하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통하여 탕감의 대가가 치러질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가정을 통하여 탕감의 대가가 치러질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가정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아들딸을 통해서 탕감의 조건을 제시해야 할 내용이 남아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자녀를 통하여, 종족을 통하여, 민족을 통하여, 국가를 통하여, 세계로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로 갈 수 있는 확실한 길을 어떻게 내 일대에 닦아 후손들 앞에 남겨 줄 것이냐? 그 시간과 거리는 멀지만 시련이 부딪쳐 오는 환경에 있어서 패하지 않고 승리적인 길을 갈 수 있느냐, 부모면 부모로서, 가정이면 가정으로서 이러한 환경을 어떻게 일시에 이겨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여러분의 생사 문제를 좌우하는 심판의 길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