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5집: 개척시대 1992년 08월 29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93 Search Speeches

선생님은 어머니를 '고 만국을 사'해야

기독교만 책임을 했으면 복귀해서 정상의 자리에 올라갔다구요. 그런데 내가 홀로 싸워 가지고 이 길을 걸어나온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아들딸의 심정 해방과 더불어 형제지권의 심정 해방이 벌어지니, 형제는 만민의 형제가 되었다 이거예요. 가인과 아벨이 형제고, 서자도 형제지요? 「예. 」 자기 혈육인 아들딸은 물론이지만 서자도 아들딸입니다. 그 아들딸들은 본래 16세까지 자라던 아담의 몸뚱이에서 태어난 입장인 거예요. 여자가 시집을 두 번 갔다구요. 이래 가지고 아담의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심정의 간부(姦婦)가 된 것입니다.

그것을 대하여 나오는 하나님의 노고가 얼마나 컸겠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기쁜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민을 수습해야 돼요. 그러려면 지금 어머니와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내보다도 서자들을 더 사랑하지 않으면 의붓어머니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딸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의붓자식들을 더 사랑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어머니를 품고 만국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사랑한 이상으로 그 아들딸을 사랑해 줘야 된다 이거예요.

그런 원리를 모르고 선생님의 아들딸들이 철없을 때 불평한 거예요. 세상에 이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참부모라면 자신의 아들딸을 더 사랑해야 할 텐데 왜 세상의 자녀만큼도 사랑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36가정들을 보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사람들만 맨날 붙들고 좋은 곳에 데려가고 하루 세 끼 남보다 좋은 것을 거둬 먹이고, 그러면서 자기들은 곁방살이를 시킨다는 거예요. 그게 뭐냐 이거예요. 의붓자식을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여편네보다 의붓자식을 더 사랑해야 되는 입장에 서야 하는 거라구요. 그것을 안 하면 복귀가 안 됩니다. 안 된다구요.

이래 가지고 아들딸의 자리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해서 잃어버린 것을 심정적인 면에서 장성기 완성급에 접붙여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딸에 대한 한을 풀어 드리는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엔 형제권이에요. 세계의 모든 만민이 형제라구요. 형제시대에는 상대가 없습니다. 아담 해와가 형제일 때는 상대가 없으니까, 자기 누이동생을 어머니의 대신으로 품을 수 있는 것이고 가까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 대신 여동생을 믿고 그리워하는 것이고 의지하는 거예요. 혼자 어머니를 생각하고 누이동생을 생각할 때, 아담은 어머니가 누이동생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된다구요. 부모가 같이 사랑하는 형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는 갈라져 있더라도 부모가 사랑하는 그 위에 아담은 오빠의 사랑을 플러스시켜야 되고, 해와는 오빠에 대한 누이동생의 사랑을 플러스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야 세계를 품을 수 있는 더 큰 심정권으로 커져서 형제의 심정권을 벗어날 수 있는 거예요. 왜 그래야 되느냐? 부모들은 사랑하는 아들딸을 대해서 생각하기를, 자기를 위해서 효도하는 것보다도 형제끼리 더 사랑해서 하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에요. 부모의 사랑을 플러스하고 형제의 사랑을 합해 가지고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형제의 사랑이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 크기 때문에, 부모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형제끼리 더 사랑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니 이런 원칙을 세워 준 것입니다.

부모는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이 더 높으니까 자기를 사랑해 주는 것보다도 형제끼리 더 사랑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 원칙이 이것 때문에 나온 거라구요.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가정은 동서남북 사방, 모든 방향으로 돌아가게 된다구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동서로 되어 있는데 남북으로 가서 360도 돌아가려고 하면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형제의 사랑권을 통과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형제라는 것은 열두 제자와 마찬가지라구요. 예수님의 12제자권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권 위에 형제의 사랑을 플러스해 가지고 올라가는 것이 부부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숙한 아담의 자리에 가면 '이제 내가 성숙했으니 결혼할 상대를 찾아야 되겠다. ' 이런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자리까지 나가게 되면 아담이라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받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마음권 내에서 해소해 가지고 '그렇게 됐다. 참 좋다!' 할 수 있는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똑똑히 알라구요. 이것을 모르면 여러분이 책임을 못 한다구요. 이것을 알아야 영계에서 협조하지, 그렇지 않으면 협조를 안 해 줍니다. 여자들이 잘 알아야 돼요. 남자들도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모르는 것을 아담 대신 가르쳐 줘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타락한 아담이 되어 가지고 속이면 안 된다구요. 아담 자체를 두고 보게 되면 부모 심정의 결실체, 형제 사랑의 결실체, 부부 사랑의 결실체입니다. 이 땅 위에 당당한 남자로서 하나님의 딸을 모셔 드릴 수 있는 장본인이다 그 말이라구요. 그런데 상대가 없습니다. 그러니 상대를 찾아가야 돼요. 상대를 맺어 주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고, 형제의 사랑은 갈라지는 사랑인 것입니다.

자기 가정을 넘어 가지고 만국을 형제 이상 사랑해야 되는 인연을 맺지 않고는 구형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동서남북, 춘하추동, 열두 달은 언제나 돈다구요. 그와 같이 부부라는 것은 동서이고, 부자의 관계는 상하입니다. 이 주변의 열두 달의 연류(連類)가 형제의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로 떠나 가지고 동네에서 어머니 같은 사람이나 누이동생 같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하나되려고 하는 거예요. 집을 떠나면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만국의 동서남북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부모의 사랑 위에 묶을 수 있게 된다면 천하가 통일되는 것입니다. 또, 동서남북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기반 위에 자식이 부모를 따라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뜰에 나가서 풀이나 동물을 바라보고 배워 가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그렇잖아요? 강아지도 포옹하듯 딱 끼고 있는 것을 들여다보면 수놈 암놈이에요. 그것들도 때가 되면 둘이 사랑해 가지고 새끼를 친다 이겁니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렇게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남자라면 여자를 대해 가지고 적극적으로 눈을 뜰 때가 온다구요. 지금까지 자기의 눈이 이렇게 직선으로 해서 동쪽으로 바라봤다고 하면, 이제는 45도로 꺾어져 가지고 바라볼 줄 안다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모두 그렇다는 거예요. 여자들도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