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집: 심정의 사위기대를 이루자 1963년 01월 1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3 Search Speeches

전체를 대신하- 기뻐하고 슬퍼해 줄 수 있" 자리를 만"어야

그러면 여러분들이, 아까 이야기했는데, 태어난다는 것은 한 번의 제일 귀한 인연을 갖고 나오는 것인데, 그 귀한 인연의 목적지는 어디냐? 심정의 자리를 잡아 가지고 승리한 모습을 가져 가지고 태평가를 부를 수 있는 안식처에 처할 수 있어야만 거기서 심정적인 목적이 달성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그런 세상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동생으로서 봉사해야 되고, 오빠로서 봉사해야 되고, 아버지로서 봉사해 주고, 남편으로서 봉사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하는 역사예요, 신부들 대해서. 지금까지 그래 왔다는 거예요. 내가 동생으로서도 봉사해 주고, 남편으로서도 봉사해 주고, 또 그다음엔 오빠로서도 봉사해 주고, 아버지로서도 봉사해 주는 거예요. 또, 성신은 무엇이냐? 누이 동생으로 봉사해 주고, 누나로 봉사해 주고, 어머니로 봉사해 주고, 신부로 봉사해 주는 거예요. 그러한 역사가 지금까지의 예수와 성신의 역사예요. 그런 것을 누가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심정의 인연을 붙들어야만 자녀가 될 수 있다구요. 아들딸이 되든가, 그다음엔 오빠가 되든가 누나가 되든가, 또 아버지가 되든가 어머니가 되든가 하는 인연을 갖고 나오는 거예요. 그래야 신랑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심정을 두고 볼 때, 아버지보다도 신랑 신부가 상대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신랑 신부가 제일 중심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에서 신랑 신부라는 말이 나오게 된 거라구요.

그게 뭐냐 하면 말이예요, 전후ㆍ좌우ㆍ상하를 갖추는 거예요. 전후ㆍ좌우ㆍ상하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슬퍼하면 사방에서 슬퍼해 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좋아하면 사방에서 다 좋아해야 될 거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지방에서 전도 잘하고 기뻐하면 말이지요, 통일교회 교인들 전부 다 좋아해야 된다는 거예요. 거 좋아하지 않는 녀석들은 전부 다 사탄이예요, 사탄. 형제가 좋아하는데 전체가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을 갖지 않으면, 그건 전체 이념세계에 속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또 속할 수 없는 자라는 거예요.

그러면 전체를 대신하여 기뻐할 수 있고 전체를 대신해서 슬퍼할 수 있는 자리를 어떻게 만드느냐? 가만있어 가지고 돼요? 그래 슬플 수 있는 길을, 기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돼요. 기뻐하고 슬퍼해 주면 인연맺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고생하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 우리들이 고생한 것이 전부 다, 지금까지 고생한 우리들의 수고와 우리들이 좋아한 모든 전부는 앞으로의 기쁨을 남겨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 기쁨을 남겨 준 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예요. 인류를 위하고, 혹은 이 민족을 위해서 남겨 주기 위해 수고했기 때문에 그것을 그때에 받는다는 거예요. `아, 이분들이 수고를 했기 때문에 복귀의 뜻을 벌어졌구나'한다는 거예요.

먼저 나가 싸우는 데는 슬픔의 자리에서 기쁨을 남겨 주기 위해 소망을 갖고 싸워서 지나갔지만, 앞으로 이 뜻을 알고 따라나오는 사람은 슬픔과 기쁨이 교차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우리가 소망으로 바랐던 것이 그때에 가 가지고 열매맺힌다는 거예요. `뜻을 알고 보니 슬픈 길을 간 선조들의 그 모든 전통은 우리를 위해 수고한 것이구나' 이러면서 나갈 때는 일면 슬픔으로, 일면 기쁨으로 복귀되어 나간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음, 나는 이런 기쁨을 다시 이 민족 앞에 혹은 세계 앞에…' 이렇게 해야 이 세계가 연결되어 나간다는 거예요.

그런 재료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 가지고,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아 가지고 되겠냐 말이예요. 그런데 세상이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는 자리에 있을 수 없어요. 고통의 세상이예요, 고통의 세상.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괴로워요. 마음을 괴롭게 하는 사람은 3배 이상 저나라에 가서 탕감받아야 돼요. 몸 괴로워하는 것보다도 마음 괴로워하는 것은 3수를 과하는 거예요. 몸은 1수를 과할수 있지만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 역사적인 면이라는 것은, 과거ㆍ현재ㆍ미래라는 것은 내적인 세계의 인연에 속해 있기 때문이예요. 오늘날 현실에 속해 있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기 때문에 내적인 인연의 세계에 속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런 때를 맞이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고충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괴로워서 마음에 주름살이 잡혀진 사람들은 말이지요, 어디에 암만 갖다 놓아도 날개가 부러진 새와 마찬가지예요. 날지를 못해요. 날 것 같은데 날지 못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그러한 환경에 세워 놓아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몸이 괴롭더라도 마음이 즐거우면 그는 승리자예요.

지금 우리들이 슬픈 세상에서 이 괴로워하는 인연을 남기고 가는 데 있어서 몸뚱이가 괴로운 것은 7, 80년 이내로 잠깐 지나간다구요. 알겠어요? 그러나 마음 괴로운 것은 억천만 년이 지나가도 지워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육신 쓴 동안에 있어서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기준을 통해 나가자는 거예요. 그게 복귀역사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