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집: 강하고 담대하여 잃어버린 복지를 회복하자 1957년 06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7 Search Speeches

모세와 예수님이 당한 고난의 시-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나가는 사람은 먼저 보이지 않는 사탄과의 싸움이 있고, 다음에 보이는 사탄과의 싸움이 있게 됩니다. 그다음에는 물질의 곤궁을 통한 싸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도 떡으로 시험하는 개인적인 시험이 있었고, 성전을 중심한 환경적인 시험이 있었으며, 또 산꼭대기에 세워져 세계를 걸어놓은 상징적인 시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싸움이 있어야 하는 원칙 밑에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나가던 모세는 어떠한 마음을 지녔었느냐? 그도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 원수와 싸울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광야에 나와서는 아말렉족속과 싸울 수 있는 마음, 굶주림과 싸울 수 있는 마음, 죽음을 각오하고 당당하게 나설 용기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바로궁중생활 40년, 미디안광야 40년, 도합 80년간을 사탄과 싸웠고, 자기 일신과 싸웠고, 굶주림과 싸웠습니다. 그러한 싸움에서 승리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이러한 길을 간 자는 모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에 있어서도 사탄과의 대결을 상징하는 사탄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의 제물로 하여 굶주림과 싸운 40일 금식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물질의 조건을 넘어서기 위하여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런 과정을 거쳐야 되느냐 하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아들딸의 위신을 잃어버렸고, 만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들을 다시 찾기 위한 조건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성도들이 나아가는 노정에도 개인이나 민족, 국가, 세계를 막론하고 악의 세계를 대표하는 사탄의 시험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딸의 영광 대신에 십자가의 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만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당하는 굶주림의 고난을 거쳐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궁중에 있던 이스라엘민족은 모세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단결하여 사탄적인 시험을 격퇴시켰으나, 그들이 이스라엘민족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광야에 나와 아말렉족속과 싸우는 마당에 굶주림이 함께 부딪쳐 올 때는 모세를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모세를 원망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 무엇 때문에 원망하게 되었느냐? 그들이 광야에서 태어나 그곳에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대했더라면 모세를 원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4백년간, 애급에서 생활해 나오던 그 습관, 그들의 생활적인 환경이 광야에서 걸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이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를 믿고 출발한 이스라엘민족이었으나 그들은 출발하기 전의 생활환경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해 망하게 된 것입니다. 또 그것이 모세의 나아갈 길을 깨뜨려 버렸고 모세와 이스라엘민족을 분리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 가나안 복귀의 전체적인 이념을 받들어 나가는 제 2의 선민, 즉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대표할 수 있는 전 세계의 크리스찬들은 제 1의 이스라엘민족이 겪은 고역시대와 같은 시대에 처하여서도 하나님의 선민다운 지조를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홀로 민족을 대신하여 나타났던 지도자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40년 광야시대에서 굶주림을 당하자 모두 원망하고 불신하여 망했던 이스라엘민족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앞길을 망친 자는 누구였던가?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고 역사성을 대신하고 전체의 가치를 대신하여 택함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생활을 해야 하고 거기에 신앙의 기준을 세워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즉, 모세의 뜻을 받들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그를 광야에서 쓸어지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이스라엘민족이 그분을 믿지 않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의 뜻을 여호수아와 갈렙이 인계받아 2세들을 데리고 가나안에 들어간 것과 같이, 이제 제2의 여호수아와 갈렙이 예수님의 뜻을 인계받아 제2의 사도들을 데리고 세계적인 가나안복지에 들어가 지상천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소망이요, 재림이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뜻을 위해 부름받고 택함을 받은 우리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섭리적인 뜻을 알아 민족적인 범죄를 다시는 저지르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걸어가던 범죄의 행로를 다시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