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1집: 선생님의 70년대를 보내면서 80년대를 맞는 경계선에 있어서 1990년 12월 30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32 Search Speeches

선생님 일생은 섭리적 내용을 수습하기 위한 투쟁사

선생님이 태어난 북한 땅에서부터 남한을 거쳐 지금까지 세계적인 모든 순방노정이라든가 여러가지 복잡다단한 문제를 일으키면서 나온 이런 모든 것은 세계적인 모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는 섭리사적 내용을 수습하기 위한 투쟁사였다, 싸움의 시대였다 이겁니다.

과거 우리 나라는 아시아의 작은 반도의 한 나라로서 일본 치하에 있었던 비참했던 실정의 나라였다는 걸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소년시대를 대한민국의 자주적 국가권 내에서 자라지 못하고 일본의 압제권 내에서, 일본의 통치하에서 자랐습니다. 25세까지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러니까 점차 세상을 알게 되고 젊은이로서 지낼 수 있는, 어려운 모든 사정을 측정할 수 있는 그런 중요한 시기에 나라 없는 백성으로 자란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됩니다.

섭리적으로 볼 때에 그런 어려운 국가적 사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나라의 통치권 내에서 민족이 당하는 비참상을 어려서부터 마음 깊이 느끼고, 이러한 환경적 여건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길이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철이 나게 되고 십대를 넘으면서 글방에 다녔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 집안에서, 외지에 나가서 공부했던 사람들은 다 객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섭리적으로, 뜻적으로 볼 때에 둘째번으로 태어난 아들이라든가 그런 사람들은 전부 다 문제가 생겼어요. 그렇기 때문에 문중에서, 공부를 시키면 죽는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에 학교 같은 데는 못 가게 하고 글방을 중심삼고 공부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자라던 선생님의 일생은 전부 다 개척, 개혁이었습니다. 글방에 다니면서 비로소 뜻에 대한 이 길을 알고 난 후 십 오육세부터 마음을 정해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 글방에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되겠다 이거예요. 비행기가 날고 기차가 달리는 이런 과학문명의 시대가 점점 확장되어서 앞날을 이끌어가게 될 것을 완연히 느끼는 그런 자리에서 `이런 글방에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 해 가지고 거기서부터 혁신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학원에 들어가서 공부해 가지고, 그때로 말하면 보통학교에 들어간 거예요. 오산소학교, 여기도 오산학교가 있지요? 그때는 오산보통학교지요. 그 학교의 3학년에 편입시험을 쳐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일년 공부하는데 열심히 안 할 수 없지요. 결사적으로 했더니 성적이 좋아서 5학년으로 월반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은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오산소학교―지금으로 보면 국민학교지요.―에서는 일본 말을 못 하게 하는 거예요. 일본 말을 못 쓰게 해요. 여러분이 알다시피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의 원수의 자리에서 투쟁한 대표적인 사람인 이승훈씨가 세운 학교이고 그런 학교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일본 말을 못 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만히 보니까, 문제는 우리가 적을 알아야 된다는 거였어요. 적에 대해 세밀히 몰라 가지고는 적과 싸우더라도 대비책을 세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정주보통학교,―공립보통학교예요―거기에 편입시험을 쳐 가지고 4학년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거기 들어가서는 일본 말을 유창하게 하게 돼 가지고 졸업을 한 거예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신앙길이라든가 인생의 근본문제라든가 어려운 모든 문제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