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집: 대신자가 되자 1969년 08월 2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1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소원과 "른 신앙의 자세

그러면 그분이 오늘 이 시간을 넘고 순간을 넘어 가지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분은 중심을 결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본의에 일치될 수 있는 가정의 기준을 결정짓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혹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중심삼고 그분이 요구하는 국가의 목적을 대신할 수 있는 그 중심이 결정되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의 무대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세계를 수습하기 위한 어떤 목적을 중심삼고 바라보며 나가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기준, 하나의 중심적인 터전을 이루는 데 있어서 상대적인 입장이라도 되어 줄 수 있는 세계를 요구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의 하나님 앞에 있어서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 더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중심삼고 과연 하늘 앞에 중심적인 입장을 결정지을 수 있는 그 존재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오늘날 이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기독교라든가, 불교라든가, 유교라든가, 그밖에도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 종교 단체 가운데서 어떠한 종교가 진짜이겠느냐? 진짜 종교는 외곽적인 그런 내용을 가진 종교가 아닙니다. 내적인 그 심정을 통하여 연결될 수 있는 기준에 서는 종교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중심삼고 볼 때 기독교는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을 중심한 자녀라 하고 하나님을 믿고 있는 모든 만민들을 형제라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두고 볼 때 한 국가의 형성도 한 가정을 기원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도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로 그 이념을 연결시켜 나갈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의 기독교가 과연 하늘이 바라는 모든 전체의 내용을 결정지어야 할 전반적인 책임을 시행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느냐? 그 책임을 하고 있는 기독교가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까지 그러한 종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러한 종교가 나타나고 있느냐? 나타나고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하나님 자신이 내심적으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러한 종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역사상의 모든 수고가 컸던 데에 비례하여 큰 서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책임을 짊어지고 책임을 해야 할 입장에 서 있다 할진대는 이 시대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각자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여기에 무엇하러 왔느냐?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규합되었느냐? 단 하나의 목적은 지금까지 슬프고 불쌍한 자리에 계셨던 그 하나님 앞에 내적인 심정의 동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안 되거든 외적인 하나의 발판이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강을 건너가는데 디딤돌이 되든가 다리가 되든가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건너가는데 쓰이는 하나의 분자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가 되어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못하니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도 슬픔 가운데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빚을 지기 위해서 왔느냐,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왔느냐 할 때,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빚을 덜기 위해서 왔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빚을 더는 데 있어서는 내 개체에 대한 빚만이 아니라 가정에 대한 빚을 청산하고 민족과 국가를 대신하여, 세계를 대신하여 빚을 덜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안 가면 그 누구라도 가야 할 길이요, 내가 이루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빚을 덜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내자신이 하늘 앞에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신념을 공고히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