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집: 뜻과 나 1970년 12월 2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47 Search Speeches

자기를 믿을 수 있"지 -"지를 알아보" 방법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아야 됩니다. 자기 자신을 알아보아야 됩니다. 어떻게 알아볼 것이냐? 이것을 알아보는 방법은 두 가지로 귀결됩니다. 하나는 무엇이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는 그 한계점이 어디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데 돈으로 하는 것이냐? 돈은 축에도 못 들어갑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에는 자기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나라의 책임이 크다고 해도 내가 나를 믿게 하는 데 나라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렇지요? 사회나 친척들도 나를 믿는 데에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상관이 없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형제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내가 나를 믿는 데에는 나 자신을 스스로 믿을 수 있어야 됩니다. 다 집어치우고 독자적으로 내가 나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믿는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거할 것이냐? 이 나라도 아니요, 친척도 아니요, 물질도 아닙니다. 제일 귀한 내 생명을 가지고 증거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데 있어서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믿겠느냐?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죽음길을 가리지 않고 따먹었던 것이 타락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자진해서 생명을 포기하더라도 내가 믿는 것을 지키겠다는 결의가 없으면 그것을 증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할 뿐만 아니라, 내 생명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영원히 죽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정성을 다하는 한계점에서 첫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생명을 뜻 때문에 바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뭇사람들이 칭찬 해도 바칠 수 있고, 뭇사람들이 배척해도 바칠 수 있고, 원수의 올무에 끌려가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은 뭇사람의 시련을 받는 자리에서도 당당히 생명을 바치고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거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왕이냐 이 자식아' 하면서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퍼붓고 침을 뱉고 별의별 짓을 다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골고루 잃어버리고 골고루 사라진 자리에서 골고루 다 바쳤습니다. 제일 억울하고 분통한 자리에서, 불신이 극에 달하는 환경에서, 일 점도 남아질 수 없는 아무런 여유가 없는 자리에서 믿음으로 불신의 환경을 극복하셨던 것입니다. 믿음만이 본이 되어서 섬길수 있는 자리에 깃대를 꽂고자 했던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러한 길을 필연적으로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