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집: 만일 하나님이 없었더라면 1973년 07월 22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317 Search Speeches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대하" 자로서 취해야 할 태도

이 민족이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날에는 공산당이 아무리 대들어도 공산당이 망하는 거라구요. 싸우지 않고 공산당을 망하게 할 수 있는 길이 있다구요. 통일교회가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같이하면 망하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의 누더기옷이 변하여 비단옷이 될 날이 불원한 거예요.

이제 이 세계 정세와 오늘날 우리들이 갖춘 기대를 중심삼고 어느 한날 어느때에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구요. 어느 하루에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구요. 여기에 선 사람은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간단하게 비판할 수 있는 내용의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누구보다도 심각한 사람이예요. 내가 한번 올바르지 못한 길을 가서 가책을 받을 때는 밤잠을 자지 않습니다. 그 뿌리를 빼어 청산짓기 전에는 밤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라구요. 심각한 사람이라구요. 이런 사람이 미치광이 놀음을 하고, 몰림뱅이 놀음을 하고, 천덕꾸러기 놀음을 하고, 왜 이러느냐?

이번에도 그래요. 공항에 드나들게 될 때, 1965년도에 보니까 거기 공항에 나온 사람들도 삐쭉삐쭉해요. 그런데 이제는 점점 달라지거든요, 세상이 달라지는 거라구요.

오늘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해 환영회를 하는 것은 고맙습니다만 하나님을 빼 놓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날을 우리가 맞이했는데, 선생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만난 우리들이 아니라구요. 선생님의 얼굴은 늙어 가게 되면 보기 싫은 얼굴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명을 짊어진 우리의 뜻은 젊어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젊어져야 된다구요. 피폐한 여러분과 더불어 같이 피폐해서는 안 되겠다구요. 아무리 선생님이 늙더라도 그 뜻은 젊어야 돼요. 가지를 뻗고 무성해야 될 것이 아니냐.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난 가지가 떨어져서 거름이 될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천지의 이치가 아니냐. 그걸 싫다고 하는 사람들은 앞길이 멀지 않다구요. 그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요, 천도를 배반하는 사람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 그러면 예수의 소원과 아까 말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지상천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지상천국을 이루지 못하고 갔으니 그 한이 이 땅에 사무치고, 기독교인들이 그 소원을 풀어 주기를 고대하면서 예수는 기독교인들을 순교의 자리로 내몰았던 것이요, 하나님도 기독교인들을 순교의 자리로 내몰았던 것이 아니냐. 그런 역사적인 하나님의 소원이 순교의 선혈의 피를 통해 수많은 기독교인들 앞에 세계적인 기독교 문화권을 남겼던 것인데, 이것을 상속받아서 하나님의 위업을 올바로 세워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못났지만, 못났지만 우리가 그 일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한국의 격언이 있지요. 정성을 모아 옷깃을 여미고 흘러오는 역사적인 흐름을 이어 천도에 순응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따르기 위해 남 모르는 길, 남이 가지 않는 길을 나선 무리가 우리가 아니었더냐.

여기서 여러분은 떨어지더라도 선생님은 가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뒤에서 불평을 하고 불만을 품더라도 선생님은 불평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구요. 여러분과 선생님을 비교하면, 불평을 해도 내가 더 많이 할 수 있고 하나님을 배반해도 내가 더 많이 배반할 수 있는 길을 거쳐왔지, 따라오는 여러분이 더 하겠느냐 이거예요.

아직까지 선생님이 가는 길 앞에는 시련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길을 자처하여 가면서 시련을 만나면 희망을 가지고 내일의 개척자의 사명을 하겠다고 다시 다짐하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보는 여러분이 현재의 입장에서 주저하고 현재의 입장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신음해서 되겠어요? 그것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대한 자로서 처하여야 할 태도이겠느냐 이거예요. 죽어도, 죽어도 그럴 수 없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되겠어요.

쓰러지더라도 배밀이를 하면서 전진해야 되겠고, 땅에 얼굴을 박고 쓰러지더라도 코를 세우고 눈은 저 세계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면서 죽어야 할 운명길을 다짐했던 무리가 아니었더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을 버리고 3년노정을 떠났다구요. 수모의 길도 참았고 기성교회 핍박도 참았어요. 누구 때문에? 선생님 때문이예요? 아닙니다. 아니예요. 아니라구요. 하나님 때문입니다.

이 억울한 것을 잘 아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그분과 더불어 억울함을 당하고, 그분과 더불어 고통을 당하고, 그분과 더불어 눈물을 흘리고, 그분과 더불어 참고, 그분과 더불어 싸워 나가고 있어요. 그러니 그분이 해방을 받아 기쁨을 느끼는 날에는 만국의 그 누구보다도 우리가 그분을 모실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