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집: 금후의 한국이 나아갈 길 1980년 11월 01일, 한국 승공연수원 (이천) Page #230 Search Speeches

일본과 미국을 소"해야 대한민국은 살 길이 있어

그렇기 때문에 이 민족을 깨우치기 위해서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선두에 서서 달려왔습니다. 이제 와서는 여러분들이 종단의 입장에서 볼 때도 통일교회를,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하지만 반대해 가지고는 통일교회를 방어할 수 없는 차원이 됐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타가 다 공인합니다. 힘을 봐도 그렇고, 이론으로 봐도 그렇고, 그다음엔 경제력으로 봐도 그렇고, 무슨 면에서도 통일교회를 능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오늘날 '통일교회에 가게 되면 빠진다'고 하는데, 빠지긴 왜 빠져요? 뭐 세뇌가 되느니, 미국에서 보면 무슨 뭐'세뇌를 당한다'고 하는데 세뇌를 미국 청년들이 왜 당해요? 거기엔 이론적이 있다는 거예요, 이론이. 그래서 한국에서 이런 기반을 닦고….

한국은 한국만으로는 살 수 없겠기 때문에 앞으로 살 길은, 여기서 횡적인 면에서 살아나갈 길은, 길이 있단다면 일본을 소화시키는 일입니다. 일본을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어 가지고는 대한민국의 살 길은 없는 것입니다. 지금 현세, 현 차제에서는…. 그다음에는 미국을 소화시켜야 합니다. 미국이 한국을 놓을래야 놓을 수 없게끔 배후에 강력한 체제의 결속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이 세계 도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 그렇지 않아요? 경제 문제를 중심삼고도 일본 놓칠까봐 야단이고, 미국 놓칠까봐 야단이고 거기에서 지령을 내리게 되면 모든 최고 간부들이 신경을 써야 할 운명에 서 있다는 거예요.

언제나 변하지 않는 미국, 그런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1965년 이후에 세계 40개국을 내가 순방하면서 공산주의 체제에 대하여 재검토를 했습니다. 공산주의가 얼마만큼 세력권을 확대하고 있느냐? 그때 생각한 것은, 시일이 바쁘다. 시일이 바쁘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래서 1967년 정월달부터 일본에 승공연합을 결성하기 위하여 47명의 요원들을 일본에 파견하려고 했는데, 이것을 정보부가 막았습니다. 정보부 배후에는 기성교회 요인들이 많거든. '이거 문 아무개, 전부 다 통일교회 기반을 닦고 말이야, 국가 망신시키고…' 이런 별의별 반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연장됐어요.

그래 가지고 할 수 없이 배후공작을 해서 1968년 4월을 중심삼고 승공연합을 발족했습니다. 그때 일본 요원들, 일본 간부들을 모아 가지고 '우리는 이제부터 일본, 이 자유천지에서 반공, 승공활동을 해야 되겠다'고 했더니 그들 가운데 어느누구도 환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 거 선생님은 한국에 있어 가지고 아무것도 모르시고 일본 실정을 모르시기 때문에, 공산당의 발판이 얼마만큼, 이것이 얼마만큼 극악하고 치열한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시기 때문에 저러시지' 하면서 반대를 했다구요.

그래서 내가 역사적인 모든 내용을 중심삼고 설득시켰습니다. '이러한 운명이 찾아오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이 일을 안 하겠느냐!' 이래 가지고 승공연합을 1968년 4월 1일에…. 그 전에 무엇을 했느냐? 전부 다 무장을 시켰습니다. 승공강의할 수 있는 무장을 시키고, 그다음엔 가두로 내보냈습니다. 공산당이 득실거리는 데 선두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대학에 파송한 거예요. 남자를 파송해서는 안 되겠거든요? 대담한 일본 여자를 무장시켜 가지고 '너는 이제부터 3년 반 동안 죽을 각오하고 조선대학 앞에서 승공강의해야 한다! 너는 총에 맞아 죽든지, 트럭에 치어 죽든지, 네가 가는 길에는 죽음의 교차로가 틀림없이 있다! 각오하라!' 이겁니다. 거 일화가 많습니다. 일화가 많다구요.

그래 가지고 이 조선대학에서 일본 외무성을 통하며 우리에게 압력을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꾸준히 생명을 걸고 투쟁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가두에서, 동경역이라든가 전국의 유명한 가두에서 공산당과 적극적인 투쟁이다, 적극적인 투쟁이다!

자 이러려니, 공산당의 조직을 내가 잘 알고, 그들의 지금까지의 모략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폭력 행동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내가 종교 지도자로서 일본에 38개 총포사를 만들었습니다. 거 이해돼요? 엽총, 우리 통일산업에서 만드는 B3 산탄총 알지요? 이 산탄총 5만 정을 일본에 수출했습니다. 훈련을 해라! 그걸 훈련함으로 말미암아 엽총을…. 그래서 지도자를 중심삼고 사격대회를 열어 가지고 젊은이들을 공산당과 부딪치게 하는 이런…. (녹음이 잠시 끊김)

공산당이 알거든요? 문 아무개가 지령만 내리는 날에는 일본은 큰일난다는 거예요. 공산당도 그것을 안다구요. 너희들이 만약에 공격해 오는 날에는 용서 없다, 공격해 오는 날에는 용서 없다 이거예요. 일본 경시청이 1년을 두고 봐도, 2년을 두고 봐도 우리가 말한 것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거예요.

이러면서 만일에…. 총포, 총을, 엽총 같은 걸, 전국 38개소의 총포사에서 20만정 이상의 총을 일시에 모을 수 있는 이런 놀음을 해 가지고…. 그다음엔,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다음엔 한국의 무술인 정도술을 가르쳐 줘 가지고 동경대학이라든가 와세다대학이라든가 경응대학에서 뭐 노동기념일 같은 때 공산당이 시위를 벌일 때 우리는 승공대회를 열어 가지고 거기에 강사를 초청해서 그들을 공격 전선으로 몰아 가는 거예요.

그러니 공산당이 가만히 있겠어요? 모든 악랄한 방법으로 공격하는 거예요. 그럴 것을 미리 알고 단상에서 시범 대회를 하는 거예요, 정도술 시범 대회를. 단상에서 시범을 보이고 그다음엔 '누구든지 나오고 싶으면 나와라!' 이래 가지고 공산당이 공격을 해 오면 현장에서 수십 명 날려 버리는 거예요. 이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