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집: 우리의 갈 길 1972년 05월 29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111 Search Speeches

천주주의의 이상

지상에서 하나의 나라를 해방시키면 천상세계에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천상에 나라가 없어서는 안 되겠으니, 땅 위에 나라가 있기 때문에 천상에도 그런 주체적인 나라가 있어야 되겠으니, 천상에 그런 나라를 형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땅 위의 세계를 구원할 때는 하늘나라 전체가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전체를 구해야 하는 것은 자동적인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이념은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나오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여기에서 두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터전을 중심삼은 아버지와 어머니, 즉 참부모의 인연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고 여자는 땅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 둘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늘과 땅을 부여 안고 호소하여 구원하는 사명을 책임지고자 하게 될 때에 영계의 해방은 물론이요 지상의 해방도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론이 맞지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천주주의라는 말을 공상적인 말이 아닌 실질적인 말로 받아들여 가지고 소화할 수 있는 길이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 영계를 해방시킬 수 있느냐? 없습니다. 빨리 빨리 해방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종족, 즉 김씨, 박씨, 문씨, 조씨 등등의 수많은 씨족은 민족을 위해서 서로 희생하려고 해야 하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려고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가지고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라의 이상을 위해서 서로 먼저 죽을 수 있고, 희생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진 민족이 됐더라면, 통일된 나라로서의 주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국가가 세계를 위해 희생하는 길을 거치지 않고는 선이 갈 수 있는 목적의 한계점, 즉 세계적인 한계점을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초세계주의적인 신을 찾아서 만나려면 오늘날 지상의 인간들이 말하는 세계주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 초세계주의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천주주의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판서하심) 뭐라구요?「천주주의요」

천주주의(天宙主義) 할 때 왜 집 주(宙)자를 쓰느냐? 집이 없어 가지고는 이상적인 터전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힘든 일을 한 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어디로 갑니까? 회사로 가나요? 어디로 가요?「가정입니다」 집으로 가는 거라구요. 집은 모든 행복의 보금자리요, 세계의 출발의 기점이요, 만복의 동기가 되는 기틀입니다. 아까 말했지만 하늘이 주체라면 땅은 대상입니다. 그 주체와 대상을 중심삼고 볼때에, 대상적인 입장에 있는 인간 가운데 사랑을 논하게 될 때는 아담이면 아담을 중심삼고 아담의 주체로 되어 있는 하나님 앞에 완전히 수직 관계로서 일치점에 규합할 수 있는 그 점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렇지요? 우주의 중심축이 비로소 땅 위에 자리를 잡기로 결정지을 수 있는 곳이 가정이기 때문에, 가정을 찾지 않고는 우주의 중심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주주의(天宙主義)라는 것입니다. 왜 집 주(宙)자를 쓰는지 알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개인이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는 거라구요. 개인적인 구원은 받았댔자 저나라에 가 가지고 하나님 앞에 종적인 사랑을 받을 수는 있지만 종횡의 사랑은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종적인 사랑만 받으면, 들락날락하는 문으로 말하면 동쪽 문으로 들어간 사람은 영원히 동쪽 문으로만 들락날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방이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인 이념을 갖추어 가지고 주고받을 수 있는 심정적 체휼의 터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플러스 마이너스의 중화적 주체이신 하나님 앞에 대상으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을 닮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가지고서야, 즉 본성의 주체인 하나님 앞에 하나된 남자와 여자가 대상적인 입장을 결하고 나서야 비로소 종횡이 합해진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완전한 사랑이요, 이상적인 사랑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의 반복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자녀가 있는 것입니다. 자녀가 나와 가지고 또 그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종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횡적인 사랑의 인연으로 묶어지는 그 자리에서 이상적인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 났지요?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체이시기 때문에 절대적인 대상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지을 때 그러한 주체와 대상의 중화적 주체로서 아담과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그런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그 전지전능한 사랑의 힘에는 무엇이든지 허락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창조하신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창조의 능력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의 능력을 부여받아 우리도 사람을 창조할 수 있는 자리가 아들딸을 낳는 자리인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지었다는 자리에 우리도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아들딸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사랑하던 그 사랑을 실제로 느끼게 해준 것이 부모가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하는 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종적인 사랑과 횡적인 사랑을 인간 앞에 다 주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우리는 부모의 자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횡적인 사랑과 종적인 사랑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종적인 주체로 계시기 때문에 주체적인 사랑의 감미를 느낄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횡적인 사랑을 통해서 또 다른 종적인 사랑의 인연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아들딸을 낳아 가지고 사랑하는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중심삼고 하나된 아담 해와를 짓고자 하신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이 바로 아들딸을 낳기 직전의 단계다 이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예」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가정을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는 것이 통일교회의 이상이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