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끝날에 남아질 아버지의 참아들딸 1959년 07월 2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8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처지와 예수의 생애

하나님은 슬픔의 주인공이요 고통의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모실 아버지는 기쁨과 영광을 누리고 싶은 마음은 갖고 있으되 그런 내용을 가지고 기뻐하거나 영광을 누려보지 못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대신 무엇을 가졌느뇨. 타락의 한과 더불어 슬픔과 고통의 내용을 지니신 슬픔의 하나님이요, 고통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오늘날 우리는 천국이 행복의 동산인 줄 알고 있지만 결코 그렇지 못합니다. 가 보십시오. 아무리 기쁜 내용이 있는가 하고 샅샅이 뒤져 봐도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가지고 영광을 누리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내용만을 가져야 할 하나님에게 기쁨과 영광과 선의 결실, 이상의 요소는 다 없어지고 슬픔과 고통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원통하다는 거예요. 슬프고 슬픈 일 중에도 이 이상 슬픈 일이 천지간에 없을 것입니다. 이 원통함에 사무쳐 `아버님'하고 뼈살이 에인듯이 몸 둘 곳을 몸부림치는 사람은 하늘에 가까운 아들 딸일 것입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만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지도자의 권한을 인정받고 땅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그날부터 그에게는 기쁨의 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땅의 인류를 위하여, 만민을 구하실 구세주로 나타났으나 그의 몸에는 영광이 오지 않았습니다. 영광이 오기 전에 고통의 세계를 가야 했고 슬픔의 길을 걸어야 했던 예수였습니다.

왜 그런가? 4천년 역사를 탕감해야 할 예수였기 때문입니다. 만왕의 왕이 되려면 먼저 슬픔의 왕자로 합격해야 되고 고통의 왕자로 합격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상의 슬픔을 통하여 거쳐간 수많은 영인들을 위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30여년의 생애에서 3년 공생애노정을 거쳐 가신 예수의 행로는 슬픈 행로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되 4천년 역사노정에서 선조들이 흘린 눈물의 골짜기를 헤매었습니다. 4천년 역사노정에서 피어린 죽음의 고개 고개를 넘으면서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고 갔던 사람들의 뒤를 고스란히 인계받아 수고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가신 길이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이 사랑의 왕자요, 행복의 왕자요, 영광의 왕자인 줄로 알았으나, 고통의 왕자요 슬픔의 왕자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