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집: 식구란 어떠한 것인가 1965년 12월 2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 Search Speeches

한 많았던 예수님

마리아 역시 요셉에게 기분 나쁜 일이 있거나 요셉이 조금만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생겨나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할 것 같습니까? 그런 사람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의붓 자식을 데리고 시집을 간 부인이라면 남편이 조금만 얼굴을 찌푸려도 그 모든 것을 어찌 자기의 의붓 자식과 연관시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입장에서 행복의 터전을 갖지 못했던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 속에는 한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명절날이 가까와 오면 자기 동생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기뻐하고 즐기며 준비할 수 있었지만, 생각이 많은 예수님은 옷 한 가지 해 달라고 할 때에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처량한 모습으로 명절을 맞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아느냐? 이것은 예수님을 만나서 물어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명절날 집에서 떡 같은 것을 해놓았다 하더라도 '어머니 나도 좀 주십시오!' 하고 먼저 손을 내밀 수 없었던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있더라도, 동생들이 입고 있는 아름다운 옷을 바라보면서도 '나도 좀 주십시오. 나도 좀 해주십시오' 하고 말할 수 없었던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사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던 예수님! 나 어린 친구들과 어깨를 겨누고 환경에 보조를 맞추며 나날을 즐길 수 없었던 예수님!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런 것을 누가 알아요? 그저 '오오! 만왕의 왕,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땅 위에 오셨다!'라고만 알고 있지, 명절 때 때때옷 입고 부모와 함께 기뻐하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 어린 예수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 천지를 둘러볼 때 그리운 것은 자신을 품어줄 수 있는 부모의 정이었습니다. 동생이 있어도 동생을 동생이라고 부를 수 없었던 예수님! 그 동생들 앞에서 형이라 자처할 수 없는 사정에 놓여 있던 예수님! 참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셨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정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이 말이 문선생이 꾸며서 하는 말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여러분 !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하나님이 매일같이 그들의 코를 꿰어서 '이녀석아, 이녀석아!' 하고 가르쳐 주실 수 있었겠어요? 그럴 수 없는 사정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서러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 줄 알아요? 나면서부터 그랬다는 것입니다. 또 왜 예수님이 자기의 혈육을 대하여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48-50)"고 하셨는지 알아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한을 가슴에 품은 채 가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