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집: 첫사랑의 혈족을 남기자 1992년 12월 13일, 한국 국제연수원 Page #305 Search Speeches

투입하고 잊어버리" 참사'의 논리

아담 해와가 갈 길이 뭐냐?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성숙해서 하나님이 마음으로 그리던 사랑의 실체 상대가 되어 가지고 이런 아들딸이 되어야 된다는 본연적인 구상이 실체적으로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닮아 가지고 몸뚱이가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세계에서 구상하던 아들의 모습과 딸의 모습이 보이는 실체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아, 선하고 좋은지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상 가운데 아들딸이 있었고, 그다음에 형제의 구상이 있었고, 부부의 구상이 있었고, 부모의 구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여성과 수많은 남성에 대한 것이 아니예요. 외아들과 외딸에 대해서 생각한 것입니다. 인류 시조로 아담 해와 단 두 사람을 지었어요.

세 사람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이 아들 중에 천하의 사랑을 중심삼은 왕자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형제 중에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부모 이상의 형님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또, 부부가 되는 데도 자기의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부부가 되기를 부모는 바라는 겁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자기의 아들딸을 낳아 부모가 되면 그 아들딸이 자기 이상, 자기 부부의 사랑 이상의 사랑을 갖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욕망입니다. 왜 그래야 돼요? 왜 하나님이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되느냐? 사랑의 상대는 백 퍼센트 투입하면 백 퍼센트밖에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상대가 자기보다 못하기를 바라는 남자나 여자가 있었어요? 절대 없어요. 자기의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있어요? 없어요. 그러면 얼마만큼 낫기를 바라느냐? 무한대입니다.

여자들은 생각하기에 자기 남편이 하나님보다도 더 잘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행하겠어요? 그렇게 세계에서 제일 최고의 남편, 아들딸도 제일 최고의 아들딸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 배, 백 배보다 더 잘나기를 원한다면 백을 백 번 투입하고 천 번 투입하고도 잊어버려야 되는 거예요. 얼마나 훌륭하기를 바래요? 영원히, 무한히 훌륭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히 투입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무한한 이상적인 상대를 가질 수 없다는 논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은 다들 어머니 아버지지요? 자기의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사람, 어디 손 들어 봐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결혼할 상대를 찾아가는데,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어요? 천만 배, 무한히 잘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상대는 무한히 잘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논리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조차도 천 배 만 배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이와 같은 참사랑의 논리에서 영생이 자리잡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공기가 주고 주고 하게 되면 저기압이 됩니다. 절대적인 저기압이 되면, 고기압권이 어디에 생기지요? 그러면 저기압이 고기압을 찾아가요, 고기압이 저기압을 찾아가요? 어떤 거예요? 「고기압이 저기압을 찾아갑니다. 」 절대 진공상태로 가면 절대 고기압권이 태풍과 같이 추격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평준화시키는 거예요.

흐르는 물은 구덩이가 있으면 반드시 메우고 가야 되는 거예요. 이것을 볼 때, 높은 곳에 있는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을 중심삼고 왜 희생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논리를 시작하느냐? 무한한 힘이 이것을 채워 주기 때문입니다. 공기도 그렇지요? 미국 공기가 한국에 와요, 안 와요? 저기압이면 몰려오거든요.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사랑의 세계는 무한히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논리를 세워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는 서로 투입하기 때문에 영원히 운동하는 놀음이 벌어져요. 서로가 투입하고 투입하면 이 가운데는 영원히 운동함으로써 영생 논리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구요.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볼 때 말이에요, 자녀가 있으면 자녀의 사랑에는 부모의 사랑을 플러스해야 돼요. 그다음에 형제의 사랑에도 부모의 사랑을 플러스한 형제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부부의 사랑으로 발전하는 거예요. 부부도 부모의 사랑을 플러스한 입장에서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더 나아가서 부모가 되는 거예요. 부모의 사랑도 전부 다 여기에 자기 부모의 사랑을 플러스한 사랑으로 나타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더하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부모는.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