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3집: 성화의 젊은이, 통일의 젊은이 1994년 01월 23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137 Search Speeches

복귀하기 위해서" 반"시 탕감이 필"해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입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섭리인데 복귀섭리는 뭐예요? 무슨 섭리예요? 재창조섭리입니다. 그것도 모르는구만. 공부들 안 했구만. 성화학생 책임자들을 앞으로 훈련을 다시 시켜야 되겠어요, 내가. 복귀는 무슨 복귀예요? 탕감복귀입니다. 이런 걸 전부 다 이야기해 주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어요. 탕감이라는 말은 원하는 거예요, 원치 않는 거예요?「원치 않는 것입니다.」원치 않는 놀음을 하지 않고는 원하는 곳을 갈 수 없습니다. 왜 그래요?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원할 수 있는 자리를 잃어버렸으니, 원치 않은 자리에 와 있으니 원하는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원치 않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원하는 자리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다 원치 않는 거라구요. 이 한계선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원치 않는 길을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귀는 뭐라구요? 탕감복귀! 인류 역사가 수천만 년 되는데 그 수천만 년을 우리 일생을 통해 넘어갈 길이 없습니다. 안 그래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여기에 필요로 하는 것이 탕감입니다. 그렇잖아요? 만약에 천원을 빚졌는데 천원을 갚을 수 없으면 '아 십원 줄테니까 탕감해 줘.'라고 하지요? 천원을 못 갚겠으니 할 수 없이 사정을 보고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환경을 아무리 돌아 봐도 천원을 물어 낼 수 없으니 십원이라도 좋으니 천원 대신 갚은 것으로 하자고 할 때 탕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수천만 년의 복귀 역사를 탕감해 나오는 것입니다. 백년도 못 사는 인간이 몇 천년을 넘어갈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이란 조건을 중심삼고 몇 천년의 한스러운 고개를 넘었다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움을 받는 거예요. 하나님과 사탄,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있으면 선의 한계, 악의 한계를 중심삼고 '이 한계를 넘어가게 되면 하나님 당신 것이요, 못 넘으면 내 것이요' 이런 조약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무턱대고 악한 신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암만 김일성이라 해도 남북한이 조약을 맺었으면 조약을 통해서 일을 해야지, 그것을 넘어설 때는 아무리 북한이 잘했다 하더라도 그건 악으로 결정되는 거예요. 규약을 지키지 않고 위반하게 될 때는 침략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잘났더라도 이 녀석! 하고 조약의 조건이 참소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한 하나님편의 규약, 악한 사탄편의 규약이 있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편의 규약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탕감하고 넘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탕감이라는 것은 걸어다니는 것을 볼 때 어떻게 가는 걸 말해요? 배밀이로 가는 거예요, 물구나무서기로 가는 거예요? 여러분 물구나무로 걸어갈 수 있어요?「없습니다.」그거 말로는 알지만 하기는 힘든 거예요. 그거 처음에는 힘든 거라구요. 그것을 상습해 가지고 걷는 것보다 좋다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탕감이 필요 없습니다. 걷는 것보다 좋다는데 무슨 탕감이 필요하겠어요? 안 그래요? 걷는 것보다 싫다고 하게 될 때는 탕감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구원섭리를 두고 볼 때, 구원의 길을 편안히 차지할 수 있느냐, 고통스럽게 차지할 수 있느냐, 어떤 거예요? 고통스럽게!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고 코에서는 콧물이 나오고 입에는 입물이 나와야 돼요. 여러분, 통곡해 봤어요? 통곡하면 눈물 나오고 콧물 나오고 입물 나오는 거예요. 3수가 합해 가지고 그런 것을 거치지 않고는 복귀의 길을 못 갑니다. 그래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할 때, 무슨 돈주고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눈물을 흘리고 타락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니까 눈물을 흘리고 돌아가야 됩니다. 눈물은 슬플 때도 나오고,「기쁠 때도 나옵니다.」정말이에요?「예.」그렇기 때문에 슬픔의 눈물을 흘렸던 것을 탕감복귀해 가지고 해방된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운명적인 길을 피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오늘날 세계가 모르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걸 알아요, 몰라요?「압니다.」

그래, 여러분이 공부도 자기 정성을 안 들이고 100점 맞기를 바라요, 정성 들였는데 90점 맞기를 바라요? 정성 안 들이고 100점 맞는 사람은 0점을 맞아도 부끄러움을 몰라요. 그거 무슨 말이지 알겠어요? '그저 그런 거예요' 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피어린 정성을 들여 가지고 100점을 맞은 사람은 그 100점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하다는 걸 아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100점을 맞으면 춤을 추고 며칠 밤을 안 자도 좋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아무 공도 없이 그냥 저냥 100점을 맞은 사람은 행복을 모르고 기쁨도 모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두고 볼 때 잘산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잘산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잘산다고 그 후손과 당대가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못살더라도 뜻을 갖고 공적인 목표를 중심삼고 내가 해방되겠다, 악한 세계에서 선한 사람이 되겠다고 찾아가는 역사 과정을 거쳐간다면 나쁜 것이 아니예요. 더 보람있는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