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집: 하늘과 같이 깨어 있어야 할 때 1959년 04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51 Search Speeches

공포와 사망의 휩"림-서 박차고 나오려면

공포와 사망의 웅덩이로 휩쓸려 들어가는 입장에서 박차고 나오려면 여러분은 천적인 팻말이나 3점의 기반을 둔 1점을 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모험을 해야 합니다. 모험, 모험을 해야 돼요. 그 흐름을 박참과 동시에 옆에 있는 새로운 무엇이라도 붙들려는 각오를 해야 삽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와 더불어 심판의 제물이 되지 않는 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내가 흐르고 있는 방향을 주시해야 됩니다. 그리고 주시하되 자기 감정으로 주시할 것이 아닙니다. 종말이 가까워 오매 여러분은 공포와 불안과 사망의 절박감이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자신의 방향을 바른 쪽으로 돌리든지 다른 일면을 보아서 어떤 생명의 구조선이 있는 가 찾아봐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세계관, 내가 느끼는 심정의 모든 인연을 박차고 나아가 다른 무엇이 없는 가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깨여날래야 깨어날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심중으로부터 여러분 개체의 감촉을 통하여 느껴지는 무엇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죽는 자리보다 나을 것이어늘, 그것을 붙들고 모험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박차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 순간에 사망의 인연이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봐도 그렇습니다.

노아 할아버지가 지은 방주는 역사적인 흐름에는 배치되는 하나의 표지였으나 그 방주는 하늘이 세워 주신, 우리 인간이 살 수 있는 하나의 표지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이 애급에서 말할 수 없는 고역을 당하고 있을 때에 나타난 모세라는 존재도 민족의 흐름에는 배치되는 표지였던 반면에 민족이 살 수 있는 하나의 표지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4천년 죄악 역사를 돌이킬 수 있는 , 죽음의 길을 살 길로 돌이킬 수 있는 하늘의 표지였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성현 현철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가 복귀될 수 있는 표지를 찾아 소망의 곳, 사정의 곳, 심정의 곳인 이념의 그 세계를 무한히 그리워하여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돌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땅의 흐름의 일체, 역사의 모든 것, 다시말해 6천년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불변의 한중심이 서지 않는 한 이 세계는 파멸입니다. 파멸이에요.

그것을 세우지 못하는 하나님이라 할진대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습니다. 그것을 세우지 못하는 하나님이라면, 인류 앞에 '나를 믿으라'는 신앙의 표어를 세워 놓은 것은 모두 가식이요 외식이 됩니다. 인류를 주관받게 하시려는 하나님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박한 순간, 사망의 자리에 생명의 구조선으로 나타나십니다.

이제 여러분은 새로운 각오를 하고, 새로운 소망, 새로운 심정, 새로운 사정을 갖고서 역사적인 소망의 때, 천적인 소망의 때, 모든 존재세계의 소망의 때가 박두해서는 자기의 일체를 박차고 부활한 모습으로서 모험을 각오하고 하나의 중심을 붙잡고 나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마음이라야 역사노정, 혹은 섭리노정에서 비로소 깨어날 수 있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먼저 소망을 갖고 사망이 물결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겠다는 각오를 해야만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