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집: 우리들의 표준점 1972년 10월 0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0 Search Speeches

마음과 말과 행동이 하나될 때 기쁨이 "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재창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냥 그대로 있어 가지고는 자기와 더불어 관계를 맺을 수 없겠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적응시키는 운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를 닮아라' 하는 겁니다. 닮음으로 말미암아 보다 가치적인 인연이 맺어지고 보다 가치적인 선한 기준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 줘야 됩니다. 무엇으로 보여 줘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은 언행심사(言行心事)를 중심삼아 가지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과 마음씨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보여줘야 될 것이냐? 말로 보여 줘야 됩니다. 말을 하는 데 있어서 '개인은 이래야 된다'고 하는 개인의 인생관을 가르쳐 주어야 되겠습니다. 그 개인은 어떠한 개인이 돼야 하느냐? 가정을 움직일 수 있는 개인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라구요. 가정이 이 개인을 움직여야 됩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세계입니다.

선이 갖추어진 세계에서 태어난 남편이라든가 아내, 혹은 그 부부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은 선이 갖추어진 그런 세계에서 배워 가지고 선할 수 있지만, 그것이 갖추어지지 않은 세상에 있어서는 그런 세계를 대표한 참된 사람이 있으면 개척해야 됩니다. 그것을 만들어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완성을 자기가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완성권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구요. 하나의 남성이면 남성으로서 이것을 만들었으면, 하나의 완성한 가정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잠시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아내는 '남편이 하는 말이 참 좋다. 나의 것을 전부 다 포기해 버리고 남편이 하는 말을 백 퍼센트 받아들여야 되겠다' 이래야 된다는 거예요.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도 '그가 동으로 가면 나도 동으로 가겠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내적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남편이 가는 대로 아내가 안 가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는 자기가 말하던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남편이 말하는 그런 내용의 자신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말뿐만 아니라 '그분이 가는 데에 나도 가야 되겠다' 그래야 끝까지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분은 동으로 가는데 '그분이야 동으로 가라지 난 기분이 나빠 서로 가겠다' 하면 거기서부터 파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참된 남편이 있으면 그 남편을 중심삼아 가지고 말을 따르는 동시에 행동을 같이 해야 됩니다. 행동하는 데 있어서 어디에 갔다 왔다가 그 다음에는 또 마음대로…. 하나의 방향을 중심삼고 행동해야 됩니다. 하나의 방향을 중심삼고 행동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건 두말할 것이 없습니다.

말하고 행동하는 데에 있어서 이것이 상치(相馳)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말과 말이 다르면 '그 사람 말과 행동이 다르다 '그러지요? 이럴 때는 다른 만큼 평가를 하게 되는데, 좋은 평가가 아니라 나쁜 평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때는 그 다른 차이로 인해서 비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막연하나마 마음이 말의 기준이 돼 있고 행동의 기준이 돼 있습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말과 행동이 하나된 자리에 서지 않고는 그 사람이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막연한 자리에서 마음이 말과 행동의 중심으로서 표준이 되어 있다 할 때, 그 표준된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말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행동이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마음을 닮은, 마음과 하나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한 마음, 그 마음은 어떠어떠한 것들을 중심삼고 움직이느냐? 그것은 목적관이라든가, 인생관이라든가, 나라를 위해서 움직인다든가, 혹은 자기 성공을 위해서 움직인다든가 하는 천태만상으로 벌어집니다.

그 마음은 어디를 향해서 움직이느냐?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는냐? 가정의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느냐? 거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예요. 국가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느냐? 혹은 세계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느냐? 더 나아가서 오늘 통일교회의 술어를 빌려서 말한다면 천주를 위해서 움직이느냐?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움직이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은연 중에 하나의 말과 행동의 기준이 되어 있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적인 존재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그 은연 중에 있는 마음과 말과 행동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되어야만, 현재 처해 있는 위치에서 그 마음 바탕을 중심삼아 가지고 비로소 기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마음과 말과 행동이 달라지게 될 때는 기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벌어지게 되면 불안을 느끼고, 자기 스스로 구속을 느끼고, 제재를 받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