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집: 때와 사명 1969년 08월 1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3 Search Speeches

우주의 공법

그러면 좋은 것은 왜 좋고 나쁜 것은 왜 나쁘냐? 자기를 중심삼고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준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좋다, 나쁘다 하는 기준은 무엇이냐? 선의 목적에 플러스될 수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거기에 마이너스되면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이 좋은 길을 찾아가려면 혼자서는 못 가는 것입니다. 상응관계를 중심삼은 상대적 관계를 맺어서 서로 보조를 맞추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남자와 여자가 같이 가야 합니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가는 데도 혼자서는 못 가는 것입니다. 길을 걸어 갈 때에도 두 발이 방향을 달리해서 간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길을 걸을 때에도 두 발이 하나의 방향을 향해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공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남자와 여자가 같이 가는데 아침 저녁으로 서로 싸우면서 몇 시간만 맞추어서 가면 되느냐?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맞추어야 되느냐? 골짜기 밑창에서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맞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골짜기 밑창이 어디냐? 힘드는 곳입니다. 저 끝보다 못한데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직선을 그려 나가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직선을 그려 나가서 그 선상을 지탱해 갈 수 있으면 이것이 이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래 인간이 태어나서 가야 할 공통적인 노정입니다.그러니 여기에 플러스될 수 있는 십자가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희비극이 벌어집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왜 슬프냐? 가슴이 아프게 슬플 때도 있는데, 그 슬픈 것은 왜 슬프냐 하는 것입니다. 무슨 힘이 나에게 작용해서 슬프냐? 그것은 이 우주의 대운세에 생명력을 좌우할 수 있는 우주의 공법의 작용 때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 공법에 부합되지 못하고 반대되면 제거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의 힘은 밀기도 하고 잡아 당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는 힘이 크면 클수록 기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가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 울게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이우주의 공법 앞에 불합격한 기준에 해당하면 이 우주의 공적인 힘이 그 사람을 밀어내게 되고, 또 그렇게 될 때에 슬픔의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쁨은 어떻게 생기느냐? 그러한 우주 공법에 일치되는 자체가 되면 우주의 힘이 그를 안으려고 합니다. 그 힘이 크면 클수록 강하게 부여안게 되고, 강하게 안으면 안을수록 그는 그 내적인 중심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기쁨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픔과 기쁨은 어디에서 벌어지느냐? 여러분 자신에게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힘의 원칙, 즉 우주의 공법을 중심삼고 벌어집니다.

그러면 그 우주의 공법이 무엇이냐? 남자와 여자가 맨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일치되어 가는 길이요, 또한 이 길이 천운이 가는 길입니다.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남자 여자가 일치되어, 즉 부부가 일심이 되어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이런 말 들어 봤습니까?

그러므로 서로 싸우고, 울고불고, 죽겠다고 야단법석인 사람들은 빨리 제거당합니다. 공적 법도권내에서 합격품이 아니 불합격품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디로 갑니까? 쓰레기통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즉각적인 슬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 자기 아들딸이 없으면 불행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없으면 부부끼리 사이좋게 지내면 되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천리법도가 사위기대 원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하나 되었으면 반드시 아들딸을 낳아서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주의 공법입니다.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하면 합격이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아들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 아들만 있으면 아들에 대한 사랑의 맛은 알지만 딸에 대한 사랑의 맛은 모르거든요.

여러분, 꿀맛이 어떻다고 누가 설명을 해서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설명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설명하기 전에 직접 입을 벌려 가지고 먹여 주고 나서 이것이 꿀맛이라고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이 없으면 왜 섭섭하고 불행하다고 하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딸만 가진 사람은 아들을 가진 사람을 보게 되면 세상에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조금 둔합니다. 그들은 개인주의 사상을 강조하다 보니 그런 감정들은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해서 동양사상에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아들딸이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완전히 하나 되어 처음부터 목적지점까지 천운과 보조를 맞추어 나가게 되면 이 가정은 영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론적인 원칙입니다. 그런 가정이라야 영생하는 것이지, 혼자서는 영생 못하는 것입니다. 설령 영생을 한다 하더라도 영원한 세계에서 고생이라는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다니게 됩니다. 행복이라는 요건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영생의 세계에 못 들어갔습니다. 즉,하나님의 나라, 이상세계에 못 들어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