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집: 심정과 절대적인 신앙 1970년 08월 09일, 한국 부산 동명장여관 Page #119 Search Speeches

가정이 하나되어 충효의 도리를 다하라

이제 이 70년도부터는 가정을 중심삼고 정성들여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개인 입장에서 정성들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협회장의 아들딸이나 총무부장의 아들딸을 한 번도 안아 주지 못했습니다. 효원이 아들도 한 번 안아 주지 못했고, 손목도 한 번 잡아 주지 못했습니다. 성진이한테도 그렇게 못 해봤습니다. 그런 면에서 성진이가 불쌍하고 처량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 아직 때가 안 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공적인 입장에 있으니까 아들딸이 '아! 우리 아빠 엄마' 할 수 없는 것이 한이 아닙니까? 선생님도 예진이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런 한을 풀어야 되겠기에 매일같이 그 애가 자는 시간에 가서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지금도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고하시고, 또 나 자신이 얼마나 수고로운 길을 거쳐 가지고 낳은 아들딸인가? 그러기에 그 아들딸은 공적인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아들딸에게 '우리 아버지는 세계에 있는 어떤 아버지보다도 훌륭한 아버지다' 하는 인식을 어떻게 심어 주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그럴 수 있는 때가 됐습니다. 예진이 나이가 금년으로만 아홉 살입니다. 열 살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70년대에는 가정을 위한 새로운 체제를 형성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가정은 가정을 믿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지구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역을 만드는 것은 가정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쓰이는 돈은 무서운 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정을 위주로 하여 재차 자리를 잡아 주는 일을 이제부터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을 알겠어요? 그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개인시대로서 개인을 대하는 때였지만, 이제는 가정을 대할 때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가정이 얼마나 충신 효자 노릇을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가정의 아들딸이 얼마나 뜻 앞에 하나되느냐? 이러한 문제들을 중심삼고 볼 때에 개인 표창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가정 표창을 받을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 애기를 업고라도 나가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부 다 모자협조를 완성시켜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선생님이 여러분들이 활동하는 데를 자주 찾아가 볼 것입니다. 그러면 좋겠지요? 「예」 고속도로로 다닐 수 있기 때문에 활동범위가 상당히 넓어졌습니다. 대구도 세 시간 가까이 걸리니까 도착하더구만. 이제 어느 곳이든 불쑥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올라가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돌아가면 순회한다고 얘기했지요?

이제는 내가 공장에 못 가더라도 내적인 면에서, 개인적인 면에서 외적인 경제적인 문제가 뜻적으로 처리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책임은 그만큼이면 하지 않았느냐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남의 신세를 지지 않더라도 먹을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공장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 있는 사업부장들, 선생님이 떠난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알겠어요? 「예」 그대신 여러분이 지금보다 더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리고 내가 매일 공장에 갔듯이 하루에 한 번씩 가서 격려해 주어야 됩니다. 공장의 그 기계 하나를 붙들고 얼마나 하나님을 불러 보았습니까? 또한 얼마나 하늘의 형제를 불러 보았습니까? 그 기계를 우리가 사놓고 기뻐했듯이 하나님 앞에 기뻐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월급을 받아야 좋아하고, 자기가 잘 되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 사람입니다. '이 공장이 잘 되어야 된다. 전체를 위해서 잘 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나름대로 자기 지구를 위해서도 정성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고 사업장이나 혹은 가정에서 선생님과 심정적인 유대를 공고히 맺을 수 있어야 됩니다. 70년대에 그런 환경을 만들어 봤으면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참부모와 참아들딸의 인연, 즉 참가정의 인연을 이 땅 위에 어떻게 공고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연결시키지 못하고서는 우리나라와 우리 세계와 우리의 천국을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