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집: 추억과 회상 1969년 08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93 Search Speeches

진정한 의미의 "억과 회상

오늘날 통일교회의 교인들이 가는 길에 있어서 자기들이 맞이하는 현실은 반드시 과거에 닦아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닦아진 터전을 현실무대에서 어떻게 바꿔치느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역사적인 어떠한 전체를 대신한 책임자나 현재에 개체의 행로를 걸어가는 현실의 책임자나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오늘부터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승리의 기쁨을 다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온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복귀섭리의 역사과정을 추억해 보고 회상하여 보았습니까? 여러분은 원리를 배웠습니다. 아담 가정으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그리고 모세와 예수시대를 거쳐 가지고 오늘까지 나온 기독교 역사에서 피를 흘린 수많은 순교열사들이 무엇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희생의 제물이 되었던가? 그들은 최후의 승리의 한날을 위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승리의 한 날을 어떻게 거두어들이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요 사명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과거가 오늘날 우리 자체를 중심삼고 또는 미래 역사의 시점을 놓고 무엇을 요구할 것이야? 물론 승리를 요구할 것이며 승리를 추구할 것입니다. 승리를 추구하는 것은 기쁨의 한 날을 맞기 위한 것입니다.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희생되었던 순교열사들의 억울함을 완전히 제거시켜 버리고, 그 순교열사들이 책임져 나오면서 소망하였던 이상의 결과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원성취할 수있는 이 한 날을 맞아들이지 않고는 오늘날 우리가 기쁜 날로서 어는 한 날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슬픈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과거를 잊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과거를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 하늘의 슬픔인 것입니다. 인간들은 땅 위에서 사는 동안에 되어진 사실은 시일이 지남에 따라 망각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귀섭리의 역사는 망각해버릴 수 있는 역사가 아닙니다. 복귀역사이기 때문에 그런 슬픈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픈 사실 가운데 눈물로 뿌려진 슬픈 사연들을 거두어야 됩니다. 어떻게 거두느냐? 슬픈 역사이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슬픈 사실을 재현시켜서 과거의 슬픔을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승리의 한 날, 즉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 복귀섭리입니다. 그럴 수 있는 한 날을 바라면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희생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해야 할 추억과 회상은 막연한 추억이 아니요, 막연한 회상이 아닙니다. 실질적인 추억과 회상을 현실에 재현시켜 가지고 그들이 바라던 이상의 승리를 오늘 내 일신에서부터 결정지어 놓아야 합니다. 밖으로는 몸에서부터, 내적으로는 마음으로부터 절감하면서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에서 승리를 결정지어 놓아야 할 것이 복귀의 운명길을 감당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이런 책임을 하늘로부터 분부받게 될 때, 적당한 시기에 벌어지는 그 환경을 내 것으로 인계받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싸움은 적당한 싸움이 아니라 결사적인 싸움입니다. 갖추어진 때를 상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내적인 문제를 결정하기 때문에 갖추어 놓는 일을 해 나와야 됩니다. 그런고로 그들에 대한 추억과 회상은 현실적인 추억이요 회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느끼는 감정적인 문제 또는 얽혀진 사정이 종족인 면에서 심정적인 문제와 일치되어야 하고, 횡적인 면에서는 그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가 하나 되지 못하여 역사적인 침범을 사탄에게 당하게 된 모든 슬픔의 내용을 다시 여기에 연결시켜 재현해야 됩니다.

종족 기준이 일치되어야만 하늘이 여기에 임할 수 있고, 또한 왔다 간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베드로, 야고보 등 12사도들과 그때의 모든 교법사 제사장들이 책임하지 못하였던 그 현실적인 기준을 오늘날 하나의 책임자를 중심삼고 내적 기준의 결정과 더불어 외적 기준을 여기에 확보시켜 놓지 않고는 탕감역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에서 과거의 슬펐던 자리로 기필코 끌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