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집: 전진과 후퇴 1970년 11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3 Search Speeches

무아의 경지-서 받" 신의 감각이 발전의 원동력

인간은 태어날 때 자기가 태어나고 싶다 하는 의식이 있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의식 이전에 하나님의 힘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전도 그 자체의 의식기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를 망각하는 자리, 의식이전의 작용적인 결과가 다짐되는 거기에서 보람있고 가치있는 내 자체의 형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의식에 앞서 하나님이 여기에 먼저 존재(存在)할 수 있는 동기의 바탕이 인연됨으로써 보다 나을 수 있는 내 자체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 자체가 '나는 이걸 느끼기 위해서 기도하였더니 느낀다'고 하는 자리는 정지되고 고착된 환경을 넘어서지 못한 자리입니다.

스스로 정성을 들이면서도 자기가 정성들이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잇는 자리, 나 스스로 기도하면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더라도 스스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지 모르게 생각하기 이전에 오관이 먼저 작용을 해서 눈물지을 수 있는 자리, 그러한 자리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식하기에 앞서서 목적을 추구하는 것보다도, 의식에 앞서 목적을 추구시켜 주는 인연이 나와 더불어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사람은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예언하는 사람이 자기의 의식 기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언을 한다면 그것은 자기의 한계선을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바탕으로 하되 무한한 힘의 모체가 그 사람의 오관을 통하여 나온다면 거기에는 새로운 예언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동기로 해서는 그러한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사에 접하는 경지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라는 관념은 쇠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무아의 자리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무의 자리에 들어가서 유의 입장에서 느끼던 이상의 힘의 자극을 받게 된다면 거기에서 재창조적인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만이 강한 자극을 느낄 수 있는 것이요, 현실의 나보다 전진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 환경을 의식하는 자리에서는 신비스러운 기도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인상이 또렷또렷하게 남아지는 자리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하더라도 현재의 환경을 초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아경을 찾아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순수한 자아를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사된 모든 요인을 제거시키고 순수한 선의 요소만이 존재해야 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선의 본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요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색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안테나를 예로 들어본다면 안테나는 스스로 찾아가 진동하는 전파를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에서 오는 전파를 느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신의 무한한 감각을 흠모하며 그 선의 감각을 받을 수 있는 완전한 자리에 설 때 진동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을 느끼게 될 때 진동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이와 마찬가지의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고요한 자리에서 무한히 신의 감각을 받을 수 있는 안테나와 같이 자기의 입장을 잊어버리고 신으로부터 오는 감각을 느껴야 합니다. 무한히 높고 높은 데에 장치되어 있는 안테나와 같이 높이고 높여서 무한히 순수하고, 무한히 가치있고 보람있는 자아를 인식하면서, 천길 만길 무한한 경지의 자리로 나아가게 될 때는 거기에서 자기도 모르는 제3의 힘이 자기에게 접속해 들어온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를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