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집: 하늘이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는 어디인가 1958년 01월 1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3 Search Speeches

천륜의 법도를 회복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말씀을 세워나오는 역사였습니다. 지금까지 하늘의 마음을 대신한 하나의 실체적인 존재를 통하여 하늘의 법도의 말씀을 찾아 세우고자 하였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찾아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오늘날 이 역사종말시대에 있어서 무한한 영적세계를 통할 수 있고 자연과학을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말씀을 찾아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게끔 하여야 하나님으로서의 승리적인 뜻을 이 땅위에 세우실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 대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하신 그 말씀을 다시금 찾을 수 있는 한 주체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천륜을 대신하고 만 우주의 소원을 대신하고 온 인류의 소망을 대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과 외적인 실체를 대신할 수 있는 한 존재를 이 땅 위에 보내셨는데, 그분이 바로 오늘날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뜻을 지니고 오신 예수님의 마음 몸은 무엇이었던가. 그 예수님의 마음은 자기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마음이었느냐 하면 아버지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자기의 몸이 아니라 아버지의 몸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자기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천리법도요, 만 인간이 지니고 싶은 소망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통한 실체적인 하늘의 성전으로서 또는 실체적인 하나님의 보좌를 대신한 존재로서 이 땅 위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천륜과 인륜을 갖춘 말씀으로써 모든 만민을 회복시켜 말씀의 가치를 지닌 실체적인 존재로 하나님이 인정하게끔 찾아세워야 할 사명을 지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이 4000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내적인 섭리의 뜻을 지니고 이땅의 속된 사람들을 바라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속된 몸이 즐길 수 있는 타락의 법도를 통해 움직이고 있는 인간들, 사탄이 우거할 수 있는 타락의 마음과 몸을 지닌 인간들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글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륜의 법도를 중심삼고 질서적인 목적을 성취시켜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한 말씀, 한 걸음, 한 행동은 천륜을 실증 시키기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반면 사탄권내에 처한 인간들은 천륜에 어긋난 법도를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이 아무렇게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로 하여금 하늘의 조건적인 말씀의 법도에 의하여 살게끔 하여 그 개인으로부터 사회·민족·국가·세계에까지 확대시켜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또한 그 일을 성취하셔야 했는데 그만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만 것입니다. 만일 그때 당시 인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4000년 동안 온 우주가 바라던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질 수 있는 유일의 말씀이요 불변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의 실체적인 존재가 다 되었다면,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자신이 하나님 대신 임재할 수 있는 안식처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지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환경을 찾아 세우지 못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