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집: 승공연합은 무엇을 하는 곳이냐 1986년 02월 12일, 한국 용인연수원 Page #219 Search Speeches

성인은 그 시대-서" 환영받지 못하고 핍박받고 몰림받았다

4대 성인을 그 당시에 놓고 볼 때, 어느누구 환영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환영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구요. 여기 기독교 신자가 있으면 생각해 보라구요. 지금이야 역사가 세워 놓은 예수님은 훌륭하니까 '아, 우리 주님,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훌륭한 분' 하고 믿지, 그 시대에는 누가 알아주었어요? 여기에 잘 믿는 집사님, 장로님들 왔을는지 모르지만 그때의 바르셋 교인, 사두개 교인 입장에 섰으면 예수님 모셨겠소 반대했겠소 할 때, 눈을 깜박깜박할 거예요.

'나 같으면 모셨지'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나 같으면' 하는 사람에게 '유대교의 법을 알아?' 하고 물어 보면 모른다는 거예요. 구약성경도 모르고 신약성경도 모르는 그가 '나 같으면 반대 안 했다' 이러고 있다는 거예요. 신·구약 성경을 능통해서,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환히 알고 있는 입장에서 이렇고 이렇기 때문에 반대 안 한다 할 수 있는 내용을 갖춘 것도 아니예요. 구약 성경도 모르고, 신약 성경도 모르면서 덮어놓고 믿으면 천당 간다고 이렇게 주장하는 입장에서 나 같으면 모셨다고 한다구요.

사람이 결정을 하는데, 옳은 사람을 누가 결정하느냐 이거예요. 성인이란 사람 중에 그 당시에 환영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의로운 사람 중에 그 당시에 환영받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면 누가 결정하느냐? 그 당시의 사람들이 결정하느냐, 후대 사람들이 결정하느냐? 이것이 문제예요. 후대 사람들이 결정했지요?

예수님도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구요. 민족 반역자로 몰려서 죽었다구요. 예수님 자신도 '아바 아바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공의의 뜻과 자의의 뜻이 거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공의의 뜻은 미래를 향하는 것이었다구요, 오늘의 뜻은 미래를 대하는 뜻이었습니다.

오늘의 뜻을 중심삼고 미래에 연결하기 위해서는 거기에는 개인이 들어가고,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 예수 개인이 들어가야 되고, 예수의 가정이 들어가야 되고, 예수의 종족이 들어가야 되고, 예수의 민족, 예수의 국가, 예수의 세계가 들어가야 되고, 예수의 하늘땅이 들어가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결정한 자체도 희미한 내 개인이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할 문제라는 거예요. '그릇됐다! 옳다!' 하는 주장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4대 성인이 옳고 그른 것을 누가 평가했느냐? 그 시대에는 전부 다 쫓김받고 몰림받았다구요. 저 때려 죽일 녀석이라고 말이예요. 조선시대로 말하면 말이예요, 유교시대로 보면 상투 틀고 전부 다 정숙해야 할 텐데 개화 바람이 불어 가지고 상투 짜르고 야단했거든요. 그때 얼마나 우리 선조들이 야단했어요? 지나고 나서 보니 '아하, 개화 바람이 불어온 것이 좋은 것이었구나' 하는 거예요. 민족을 아는 것보다 세계를 알 수 있는 무대에 나서서 세계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니 귀한 거예요.

이런 얘기하게 되면 시간이 많이 가지만 이것은 우리 사고하는 사람들,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본 생각이예요. '좋다!'라는 이 결정을 누가 해야 되느냐? 인간들이 지금까지 그 성인들이 간 길을 생각할 때, 그 시대에는 좋다고 결정한 사람은 없지만, 전부 다 몰리고 십자가에 달려 배반받고 그랬지마는 후대의 역사를 지내고 보니 그 사람들이 주장한 것이 옳았더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 못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은 그 시대에 태어나서 고생길을, 욕을 먹고 쫓김의 길을, 피난길을 누구보다도 많이 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즉, 마음의 피난길과 몸의 피난길에서 허덕이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문 아무개라는 사람도, 여러분의 문총재라는 사람도 말이예요, 문총재라는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환영을 받았어요? 물론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나를 환영했겠지요. 그렇지만 우리 8남매 형제 중에서 어머님이 나를 더 사랑하면 형제들이 전부 다 '싫다'고 하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 둘이 못났어도 아들이니까 사랑하지만 말이예요, 위로 태어난 여덟 형제가 '4분의 1밖에 안 되는 부모가 좋다는 것을 우리는 반대합니다'라고 할 때는, 곤란하다는 거예요. 형제들이 반대하는 것은 그릇되고 어머니 아버지 사랑한다고 하는 그걸 옳다고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에는 그것을 전부 다 수습해야 됩니다.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게끔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몰랐다가는 큰일난다는 거예요.

오늘날 문 아무개라는 사람을 환영하는 대한민국 사람 어디 있어요?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훌륭하다고 버티고 앉아 계시지만…. 미안합니다. 먼데서 오기도 싫은 걸 불구하고 왔는데 버티고 앉았다니, 어른들 앞에서…. 하긴 내가 나이 많지요 뭐, 70이 가까운데. 여러분들이 여기 앉아 계시지만 여러분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을 보면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가 얼마만큼 근량이 나가나 재 보려고 왔다는 거예요. 몇 푼짜리나 되느냐 이거예요. 우주에 사람은 이래야 된다는 공정한 저울이 있어 가지고 그 저울에다 달랑 올려놓으면 '아이구, 나는 올라갈 줄 알았는데 거꾸로야, 거꾸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거꾸로 안 된다는 보장이 있어요? 없지요? '나는 잘났다고 생각하는데 대우를 요렇게 해줄 수 있어?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우주가 모른척 해?' 그럴 수 있어요?

그러면 참된 사람을 잴 수 있는 수평이 있다면 딱 올려놓고 '야, 만점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찾아봤어요? 오늘날 불교의 신자면 불교 신자, 4대 성인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장급들도 서로 싸우지요? 자기 교파에서 싸우면 그것으로 끝나는데 다른 종단들하고 싸워요. 기독교하고 불교하고 하나될 수 있어요? '그건 알 게 뭐야, 다 싫다. 당신 이렇게 하면 난 이렇게 한다' 이런다구요. 그 어떤 것이 바른 거예요? 그게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