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5집: 새 나라 통일을 위한 지침 1992년 01월 20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198 Search Speeches

무형의 실체가 유형의 실체로 전개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라는 그 자체는 누구냐 하면…. 아담 해와 자체를 하나님이 지었다면 어떻게 지었을까? 흙으로 빚어서 지었다면 어떤 흙으로 지었을까? 어디서 출발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 이거예요. 또 아담 해와를 장성한 사람으로 지었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애기로부터 지은 거예요. 하나님이 애기를 밴 어머니가 품어 키우는 거와 마찬가지의 그런 과정을 거쳐 가지고 지었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고는 이 모든 3단계의 질서를 통한 존재의 형성이라는 것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 유아기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장성기가 있었다 이거예요. 이건 천리 도리입니다. 그 다음에 완성기가 있었다 이겁니다.

그러면 유아기는 어떤 유아기였겠느냐? 무형의 하나님이 무형의 세계에서부터 유형의 과정을 거쳐올 수 있는, 애기의 존재를 품고 키웠다는 논리로부터 시작해야 된다구요.그게 무엇이냐? 애기들이 태어나 가지고 자라서 성숙해 가지고 결혼할 수 있는 자리까지, 부모가 될 수 있는 자리까지 어떻게 나가느냐? 하나님이 지금까지 존재에 대한 역사적 오랜 과정을 계열적이라고 할까, 단계적이라고 할까? 급적(級的)으로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와 같은 이런 과정을 거쳐온 그 사실을, 인간을 통해서 다시 당신이 자라던 그 역사적인 무형의 과정을 실체로 보기 위한 존재가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형성되어야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는 논리가 나오는 거예요. 하나는 종적이고 하나는 횡적이니 종횡일신의 이론을 취할 수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지은 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창조주로서 나타날 때까지 역사적, 내정적인 원칙을 중심삼고…. 존재의 기원으로부터 지금까지 성장한 과정을 실체적으로 전개해 나오는 과정이 아담 해와 창조과정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 어디서부터 연결되느냐 이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자기 자신이 끌어나오던 세포가 합해져 가지고 이렇게 큰 거와 마찬가지로 애기가 열 달 동안에 자라는 과정을 거쳐 나가면서 남자 여자의 형태로 갈라져 나오는 것과 같지 않았겠느냐 이거예요.

그게 왜 그리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생명 유전을 어떻게 하느냐는 논리에 대한 해석법이 있을 수 없어요. 유전적 내용을 어떻게 전개시키느냐 하는 논리를 세울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본질적인 무형의 형태와 유형적인 형태의 본질이 일체적 내용의 인연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전개될 것을 필요로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주체 앞에 상대권을 필요로 한다는 거예요. 우리 뜻으로 말하면, 성상 앞에 형상이 필요하다는 것이 돼요. 내적 성상은 외적 형상과 모든 근원적인 면에서 영합도 되고 통할 수 있는 내연이 있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 하나 태어나서 자라는 그 과정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신이 실체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내적인 모든 존재가 표현되어 가지고 나타나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게 자기예요, 자기. 나타난 실체라구요.무형의 실체가 유형의 실체로 전개되니 만큼 거기에 모든 전부를 투입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사랑한다는 그 자체는 뭐냐? 자기가 진짜 사랑하는 것에는 자기의 생명이나 정신이나 양심이나 육체나 자기의 모든 전부를 투입하고 싶은 거예요. 서로 주고받는 거지요? 서로 바꾸자는 거예요. 전부 다 꽉차고 넘치리 만큼 서로 주고받고자 원하는 그 자리에서 사랑의 관계는 맺어지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도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본연적 세계도 그런 원칙에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나가야 되는 거예요. 그것은 내적 외적, 몸 마음의 일치와 마찬가지로 성상적 하나님의 무형의 존재와 형상적 실체로 전개된 것이 일체성을 갖추는 자리에…. 하나의 세포에서부터 전체까지 일직선을 거쳐야 된다 이거예요.

우리 인간의 몸뚱이에 4백조 개의 세포가 있으면 그 세포 세포가 전부 다 연결될 수 있는 자리에서 격동하게 된다구요. 어떤 부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 근본 뿌리에서부터 저 가지와 순 끝 전체까지 하나로 화해 가지고 느끼는 사랑의 체휼감이라는 것은 통일적이다 이거예요. 전체적입니다. 부분적이 아니라 총괄적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 창조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커 온 것을 실제로 재차 전개시켜 나오는 거라구요. 거기에 하나님이 흥미를 느끼고, 자극을 느끼는 거예요. 사람들도 그렇잖아요? 예술가들이 자기의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기 내적인 소성을 전부 다 실제 형상으로 전개시키는 놀음 아니예요? 그러면 자기 뼛골 속 깊은 데까지 짜내 가지고 투입하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