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집: 사망의 험로 1980년 04월 27일, 미국 Page #166 Search Speeches

타락과 하나님의 슬""

자, 그러면 타락과 하나님의 슬픔…. 오늘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동물과 같이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뜻 있게 생각하고 참다운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 악한 세계를 부정하고 선한 세계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이 악한 세계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인간의 힘으로 할 것이냐, 누구의 힘으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지극히 중요한 문제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라는 것은 타락 관념, 타락의 분함을 어떻게 감지 하느냐? 이것은 신앙의 비중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당연히 그래야 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까지도 비참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했느냐? 형용할 수 없이 비참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문제냐, 하나님이 문제냐? 그게 문제예요. 사람이 문제냐, 하나님이 문제냐?「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문제라면 신(神)은 필요 없다 이거예요. 신 없이도 사람이 해결할 수 있다 이거예요. 또, 신만이 문제라면 사람이 필요 없다 이거예요.

그러니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신과 사람, 하나님과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하고 사람하고 하나되어야 됩니다. 같은 입장이니까 무엇을 해결하더라도 같은 마음을 갖고 같은 태도와 같은 행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나는 웃고 있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그저 험산준령 산골을, 그저 몽블랑 같은 산꼭대기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데 사람은 평지를 가고 있다 이거예요. 사람은 말이예요, 하루에 세 끼, 때에 따라서 점심때에는 점심을 먹고, 저녁때에는 저녁을 먹고,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잘 때는 자고, 일할 때는 일하고 다 그러지만, 하나님도 그러느냐 이거예요. 하나님도 잘 때가 있고, 먹을 때가 있고, 그렇게 섭리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은 1년이고 2년이고…. 하나님은 지구성 안에서 사나요, 지구성 밖에서 사나요? 1년, 2년 하는 것은 지구성 안에서의 말이예요. 그건 하나님께는 소용없다 이거예요.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한 번 슬펐을 때, 하루 슬픈 일이 있었을 때 그 슬픔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슬픔이 없어져요? 생각해 보라구요. 만약에 하나님이 슬퍼할 그런 자리에 있어서…. 슬픔이고 뭣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저 앤트(ant;개미)와 그래스호퍼(grasshopper;베짱이)의 일화와 마찬가지로 말이예요, 개미는 그저 수고하며 일하는데 이 베짱이는 춤만 추니까 개미가 뭘 위해 수고하는지 그 사정을 알 수 없다 이거예요. 춤추는 베짱이는 수고하는 개미의 어려움을 모른다 이거예요.

자, 개미가 일하는 데 있어서 '나 이거 힘들어서 허리가 이렇게 잘룩해졌다' 하는 그 사정을 알아주느냐 이거예요. 베짱이와 같은 것이 암만 와서 위로해도 통하지 않는다구요. 개미가 일하면서 눈물을 흘린다고 할 적에 베짱이가 와 가지고 위로한다고 통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개미 할아버지, 그 개미보다 더 일을 한 할아버지가 와 가지고 '야야, 다 그거 참아야 돼' 그러면 된다는 거예요. (웃음)

이 일화로 말하면 우리 인간은 베짱이 같고 하나님은 개미와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여러분들 그렇지요? 미국인들의 생활을 보면 베짱이와 같이 마시고 춤추고 어떤 사람은 디스코를 하고 야단이더구만. 미국의 2억 4천만이 그저 그렇게 디스코 댄스를 하면서, '하나님이 슬퍼하신 것을 우리가…' 하면 그거 통하겠어요?「아니요」 우리들이 위로하면 통하겠느냐 말이예요.「아니요」 그런데 하나님의 할아버지가 있어 가지고 '얘야 하나님아, 야야! 하나님아 너 뭣하니?' 그러면 '우우우' 하면서 통한다구요.

그러면 하나님은 이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기쁨으로부터 출발했느냐, 슬픔으로 시작했느냐?「기쁨으로부터요」 물론 행복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출발을 했지만,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나요?「슬픈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혼자 기뻐할 수 없다구요. 사람을 중심삼고 사람이 다 완성하여 뜻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기뻐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다 깨져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와 인류역사는 기쁨의 역사로부터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행복의 역사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하하하 웃는 소리로 출발했겠나요, 엉엉엉 우는 소리로 출발했겠나요? 웃음 소리로 시작한 것이 아니고 울음 소리로 시작했다 이거예요.

그 울음 소리는 역사를 통해서 그치지 않고 퍼져 나왔다는 거예요. 역사의 출발이 그랬고, 역사의 과정이 그랬고, 미래의 역사가 그럴 것이라고 예측되는 입장에 있어서 이 역사의 희망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느냐, 희망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라는 거예요. 이 가운데서 아무리 행복하고 아무리 기뻐했댔자 그 울음 세계에 포위되고 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