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찾으시려던 예수님 1959년 10월 1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18 Search Speeches

배반당해 홀로 남은 예수

예수가 왔다 간 이후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남아 있습니다. 배반한 형태는 남아 있으되 배반당했던 형태는 어디 갔느냐. 사라졌습니다. 배반당하여 죽어가면서 남긴 한서린 예수의 말씀은 남아 있는데, 예수의 심정과 사정은 어디 갔느냐? 하늘을 대신하여 싸움을 지도해야 할 예수, 땅을 대신하여 승패를 겨루어야 할 예수였는데도 불구하고, 남지 않아야 할 것이 남아 있고 남아 있어야 할 예수의 터전은 남아있지 못한채 다시 끝날이 되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 자칫 잘못하면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고 누가 자신하겠습니까? 유대교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입니까?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을 세기말,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끝날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나타난 진리를 찾아 헤매는 것이 하늘의 뜻에 맞는 것이 아니요, 형식에 매여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하나님이 세우신 예수님은 모르는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도둑과 같이 나타났습니다. 영광의 왕자가 도둑과 같이 왔습니다. 호화찬란한 왕궁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똥거름내 나는 마굿간에서 태어남이 웬말입니까?

그런 자리에 태어난 예수를 메시아로 믿으라고 권하던 동방박사는 어디 갔느뇨? 그럼 예수를 메시아라고 증거하던 목자는 어디 갔느뇨. 안나, 세례 요한 일당은 어디 갔는고. 다 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이 가버리니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도 갈 수밖에, 유대교단도 갈 수밖에… 그리하여 예수는 홀로 남아졌습니다. 홀로 남아진 예수님입니다. 홀로 남아진 예수.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시고 싸우시어서 세우고자 하셨으나, 홀로 남아진 예수, 하늘이 거느렸던 수많은 장병을 다 잃어 버리고 홀로 남은 예수, 교단을 다 잃어버린 예수, 민족을 잃어버린 예수였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믿고 있는 이 성경말씀은 배반당한 예수의 말씀입니다. 수많은 사도들은 예수를 배반할 뿐 아니라 말씀도 배반했습니다. 말씀도 배반당하고 자신까지도 배반당하던 예수였습니다. 하늘이 그처럼 배반당 할 예수를 세우시기 위해서 4천년을 수고하셨습니까? 아니올시다. 예수는 왜 믿는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 예수의 분함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믿어야 합니다. 천당에 가든 지옥에 가든 개의치 않고,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의 소원을 풀어주고, 지옥의 왕자가 될지라도 하나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믿어야 할 텐데 `예수가 망하든 하늘이 어떻게 되든 나만 천당가면 됐지' 합니다. 이것은 강도보다 더 합니다. 신앙이 본질적으로 틀렸어요. 오늘날 이러한 기독교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가는 것이 통일신도들이 가는 길입니다.

찾아야 할 예수는 역사적인 예수입니다. 역사적인 예수. 그 예수는 시대적인 예수입니다. 또 그 예수는 미래적인 예수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전개하려던 역사가 잘려 버렸습니다. 시대도 잘려 버렸고 미래도 잘려 버렸습니다. 갈 곳 없는 예수가 돼버렸다는 것을 알아요? 4천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신 역사적인 인연의 결실체로 오신 예수를 붙들고 울고 불고 죽고 살고 해야 할텐데 다 잃어버렸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을 붙들고 가야 했던 예수는 그 민족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 이후에 예수가 주관할 수 있는 참다운 후손들이 되어 있느냐? 오늘날 이 시대는 예수를 또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인연을 가지고 천상의 사명을 대신하여 왔던 분입니다. 그런 분이 땅에 와서 과거를 잃어버린 것만으로도 분한 일입니다.

오늘날 시대, 역사적인 종말시대의 예수가 다시 나타난다면 역사적인 인연을 세워야 됩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역사적인 인연을 세워야 돼요. 역사적인 인연을 세우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날 기독신도들은 이스라엘과 같은 민족, 혹은 예수를 배반한 유대교단 같은 교단 말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기준에서 예수를 받들어 드릴 수 있는 제2이스라엘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신도들은 성경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전하는 근본 정신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족보를 캐고 무엇을 논위하더라도 그 족보의 위신과 가치를 책임성 있게 다룰 수 없으면 족보를 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