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3집: 3대 주제사상을 뿌리 박자 1990년 06월 26일, 한국 광주 신양파크호텔 Page #231 Search Speeches

투입하고 잊어버리" 자리-서 참사'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어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영계에 가게 되면 자동차가 있겠소, 없겠소? 그거 궁금하지요? 그런 것을 배우려면 이제 문총재와 사바사바 잘해야지. 내가 이걸 알려고 얼마나 뼛골이 녹았는지 알아요? 이런 걸 공짜로 가르쳐 주려고 수련받으라고 하는데, 이건 잘났다고 뻐뜩대고….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우리 부모예요. 내 참된 스승이예요. 하나님은 내 주인이예요. 주인같이 모시고 스승같이 모시고 부모같이 모셔야 돼요. 정성을 들이고 들여도 부족한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그게 참사랑입니다.

그러면 참사랑이 도대체 뭐냐? 참사랑이 뭐예요? 이거 똥개 같은 세상에서 여편네하고 남편하고 사랑하는 게 참사랑이예요? 그건 타락한 거예요. 타락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싸워요. 병이 나서 그런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싸우지요? 통일해 봤어요? 그러니까 그거 진짜 사람이예요, 가짜 사람이예요? 답변해 봐요. 몸과 마음이 싸우는 사람이 진짜 사람이예요? 평화스럽고 당당해야 합니다. 주체사상을 지녀 가지고 어디 가더라도 모순된 내용이 없이 당당해야 됩니다.

「앞으로 그렇게 돼야지요」 아, 글쎄 지금 물어 보는 거지 앞으로는 뭐가 앞으로야?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그릇되었다는 거예요. 젊은 사람이 말이예요…. 자기 주장한 것이 옳다고 전부 끌어대고 그래요. 문총재가 아까 그릇된 것을 보고는 못 견디는 성격이 있다고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그러고 있어요. 그 성격을 고쳐야 됩니다.

보라구요. 모략중상을 어떻게 제거하느냐? 사기를 어떻게 제거하느냐? 사회악, 부정부패를 어떻게 제거하느냐? 그거 간단합니다. 자기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 자기가 왜 생겨났어요? 참사랑이 뭐냐?

보라구요. 아까 하나님도 자기 상대가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란다고 그랬지요? 여러분도 그렇지요? 그 논리적 이치에 있어서, 하나님이 자기보다 잘난 상대를 만들려고 할 때 백을 가졌으면 백을 투입하게 되면 자기만한 상대밖에 안 돼요. 알겠어요? 그거 똑똑히 알아요. 2백 퍼센트, 천 퍼센트 투입하고도 부족하여 투입하고도 또 투입하려고 할 때 자동적인 순환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거 놀라운 법입니다. 참사랑에는 소모가 되는 법이 없어요.

역사시대의 사랑을 가지고 산 충신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예수님이 일대에서, 그 시대에 있어서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인종지말의 길을 갔지만 왜 역사시대에 점점 확대되느냐? 그 이치가 무엇이냐? 참사랑을 투입했기 때문입니다. 문총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짜 사랑을 가지고 큰소리했다면 다 망했어요. 참사랑의 길을 가다 보니 암만 두들겨 패도 망하지 않아요. 참사랑은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또 투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무한한 이 우주에 연결되는 거예요.

대기를 예로 들어 말하면 저기압권의 진공상태가 무한하면…. 요즘 태풍이 시속 150킬로미터 속도로 올라오고 있다고 하는데, 이게 진공 중의 진공상태로 들어가게 되면 고기압권은 오지 말라고 해도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연운동이 발생하는 거예요. 이걸 보면 하나님이 놀라운 분입니다.

참사랑을 가지고 자기보다도 훌륭한 분을 찾겠다고 하니 백 퍼센트, 천 퍼센트 이상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투입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스톱이 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설명하면 그렇습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게 될 때 자기보다도 더 훌륭한 사랑의 상대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요소, 보이지 않는 무형요소를 백 퍼센트 실체화시키기 위해서 투입하고도 더 투입하려고 했다는 거예요. 그 말은 뭐냐? 투입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그 자리에서만이 참사랑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간단한 내용입니다. 이게 우주의 근본원리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의 부모님, 어머니면 어머니가 자기 아들딸을 기저귀를 채우고 키우게 될 때에 뭘했다고 기록한 수첩을 갖고 있습디까? 보라구요. 명절이 다가와 사랑하는 아들한테 옷을 사 주려고 백화점에 가 보니까 옷이 좋은 게 많아요. 그런데 포켓에는 돈이 얼마 없어요. 자기 처지를 봐 가지고는 제일 가는 훌륭한 옷을 사 주고 싶은데 셋째번 넷째번 옷을 만지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걸 사 오는 부모가 만족해요? 그럴 수 없어요. 주면서 '다음에는 더 좋은 것 사 줄게' 이러는 것입니다. 그런 참의 모습의 어머니가 계신 거예요. 의붓어머니 같으면 '그 옷 누가 뭐래도 내가 정성껏 사 왔는데 그게 뭐냐?' 이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자식일 때에는 '다음에는 더 좋은 것을 사주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더 좋은 것을 위해 더 투입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참사랑의 뿌리는 찾아온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효자가 뭐예요? 일생동안 부모를 위해서 투입하고 투입하고 생명을 바치고 뼈를 녹이고 이러더라도 다 잊어버리고 '더 해야지. 더 해야지' 이러는 것입니다. 자기가 없어요. 영원히 자기가 없어요.

하나님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자기의 사랑하는 나라를 망국지종으로 만들면서도 더 투입하고 더 투입하려고 했습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더 투입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의 자리에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를 걸어서 불행하게 만들 자가 없다는 거예요. 초월합니다. 그게 무슨 논리인지 이제 알겠지요?

열 친구 가운데, 10년 20년을 두고 볼 때, 대학을 나온 학박사가 많지마는 20년 동안 친구를 위하고도 자기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연히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거 맞아요, 안 맞아요? 그 논리와 마찬가지로 여기 많은 사람이 문총재 신세를 졌다구요. 내가 이 일을 빚을 지고 하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서 그러는 게 아니예요. 빚을 지더라도 하고 또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빚을 누가 물어 주더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빚을 누가 물어 주더라 이거예요. 그걸 채워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우주가 보충해 줘요. 그렇게 십년을 가다 보니 세계가 다 나를 따라오더라 이거예요. 놀라운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