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집: 중요한 사항 1972년 11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73 Search Speeches

상대와 심정일치가 되" 것이 가장 '"한 문제

마음과 몸이 하나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은 자기 하나를 중심삼은 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관계에서 그것이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기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홀로 계시면 고독한 분일 뿐입니다. 거기에는 이상도 없는 것이요, 기쁨도 없는 것이요, 행복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을 창조한 것은 상대완성을 위해서, 상대를 완성시킴으로 말미암아 그와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내가 좋아하면 그도 좋아하고, 내가 슬퍼하면 그도 슬퍼할 수 있는 상대적 존재를 필요로 해서 인간을 지은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시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상대를 통해 가지고 완성시켜야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상대가 완성될 때까지는 어떤 마음을 가지셨을 것이냐? 그저 매양 좋기만 하셨겠느냐? 상대적 요건이 주체적 모든 내용을 결정하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그냥 좋기만 하셨겠느냐? 그 상대적 요건이 완성될 때까지의 그 기간은 하나님이 간절히 바랄 수 있는 한 기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간절히 소원하던, 그 사랑이 높고 크면 클수록 거기에 대비하여 하나님이 내심으로 그리워하고, 내심으로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추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했겠느냐? 그냥 그대로, 저대로 가만 놔 두면 저렇게 될 것이다가 아니라 완성될 때까지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상대를 무엇보다도 사모하는 마음이 아니었겠느냐? 염려를 한다면 무엇보다도 염려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겠느냐? 이것을 꾸리가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아담 해와 그 자신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내정(內情)을 살필 수 있었으면 타락할래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내정이라는 것은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자식은 부모에 대해서 그 깊은 심정까지는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급(未及)했습니다. 결국은 무엇의 미급으로 타락했느냐? 물론 어려서 타락했겠지만, 그 연령의 미급이 타락의 동기가 된 것이 아니라, 심정의 미급으로 말미암아 타락했다는 것입니다.‘저 분은 나를 위해 있다. 저 분은 나와 더불어 있다. 저 분은 나와 하나다. 저 분은 영원히 나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 나와 더불어 일체의 모든 문제에 관계되어 있다' 는 것을 만약에 아담 해와가 느낄 수 있었더라면 그들은 타락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타락은 심정의 일치점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바람과 자기들이 바라는 것이 엇갈렸기 때문에, 자기들이 생각 하는 방향이 하나님이 생각하는 방향과 엇갈렸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제기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생명의 사활 문제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뼈살에 사무치도록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한 것입니다. 결국 심정의 일치점을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타락한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뭐냐? 상대적 환경이, 상대적 요건이 모든 타락의 요인을 가져왔다는 것을 두고 볼 때, 실패의 요인도 상대적 입장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두고 볼 때, 이 상대를 어떻게 자기의 심정적 일치점에 머물 수 있게끔 가르쳐 주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타락한 데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상대적 요인이므로 그 상대적 요인을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복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 그 상대에게 어떻게 해야 자기 마음을 알 수 있게 만들어 주느냐 하는 것이 제일 문제된다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의 문제를 두고 볼 때도, 아벨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벨이 가인과 하나되는 문제에 있어서 아벨이 좋아할 수 있는 그 마음을 어떻게 가인에게 체휼시키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좋은 것이 아벨만 좋은 것이 아니라, 가인이 그 좋음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섰더라면 가인도 함께 좋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심정이 일치하지 못 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라구요. 노아와 노아의 아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고, 아브라함과 제물 관계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야곱의 생애 노정에서도 그렇고, 모세나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의 생애 노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상대적 존재가 어떻게 심정 일치를 갖느냐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의 귀결점이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