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집: 통일방안과 나 1972년 09월 01일, 한국 남산성지 Page #257 Search Speeches

통일방안은 사'

자,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뜻의 길을 알았습니다. 뜻의 길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뜻의 길을 어떻게 전진 발전시키느냐?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통일시켜야 됩니다.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희생을 해야 합니다.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재창조의 역사를 해야 합니다.

재창조의 역사는 무엇이냐 하면, 자기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입니다. 창조역사는 뭐냐? 하나님 자신도 만물을 짓게 될 때, 그냥 그대로 생각대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자기의 힘을, 에너지를 투입했습니다. 자기에서부터 소모전쟁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히 투입되고 난 후에는 그냥 그대로 돌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데는 무엇이 돌아오게 되느냐? 사랑이라는 것이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열만한 힘을 투입했는데, 그 열만한 힘을 투입받아 가지고 열만한 가치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 대상이 어떻게 열 이상의 힘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발견하느냐? 그것을 발견하지 않고는 하나님도 계속적인 작용, 계속적인 의욕, 계속적인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돌아오느냐? 그냥 그대로 투입된 힘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는 거예요. 사랑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그 사랑은 무엇이냐? 열만큼 플러스된 것이, 자기의 이념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합해 가지고 돌아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희생하며 투입해 놓고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 없으면 돌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 모든 것을 다 줍니다. 다 투입합니다. 부모가 그렇게 투입해 가지고 자식이 자기의 사랑의 마음을 대해 가지고 반기는 그 얼굴을 보게 될 때, 그 부모를 반겨 주고 부모의 사랑하는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을 보게 될 때, 부모의 수고는 여기에서 기쁨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쁠 수 있는 것은, 사랑을 빼놓고는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쁨이라는 말, 행복이라는 말, 혹은 이상이라는 말은, 전부 다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보라구요. 여러분은 혼자 기쁠 수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혼자 좋아했댔자, 그것은 좋은 것일 수 없는 것입니다. 혼자 이상을 꿈꾸었댔자, 그것은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적 환경을 통해 가지고 이상이니 하는 모든 것이….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도 고립적인 개체를 중심삼고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관념입니다. 그 상대적 관념을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식도 아니요, 인간의 권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방안은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간격을 통일시키는 것은 인격이 아닙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사랑을 완전히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받기 위한 자리에 서려면,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하나되는 데는 같은 자리에서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의 자리에서 하나되어야 됩니다. 주체와 대상의 자리에서 하나되는 데는 주체는 완전히 주려고 해야 되고, 주체가 완전히 주려고 하는 그 자리에서 대상은 완전히 받으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가 돼야 합니다.

100을 주려고 하는 주체가 있으면, 나는 100을 받아야 되겠다고 해야 되는 거예요. 100을 받으면 내게 자기라는 것을 남겨 놓고는 받을 수 없습니다. 하늘이 100을 주려고 하는데 우리 인간이 자기라는 생각이라든가, 자기라는 주장이라든가, 자기의 그 무엇을 중심삼고, 자기 욕망을 중심삼고 받으려고 하면, 그것을 남기고 받으려고 하면 100을 채울 수 있는 자리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자기 욕망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그것이 80, 70, 60, 50이 될 게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100을 다 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100을 완전히 받으려면, 너에게 있는 모든 것을 비워 버려라. 모든 것을 없애 버려라. 모든 것을 부인해라. 여기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려라.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전체를 포기하고 절대 복종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렇지 않아요? 복종이 나쁜 줄 알았더니, 복종을 완전히 해 나가게 되면 그 사람을 점령할 수 있다는 거예요.

효자는 뭐냐? 부모의 의사와 부모의 말이라든가, 부모의 일체 앞에 복종하는 행동을 나타내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충신도 그런 것이 아니냐? 애국자도 나라를 위하여 몽땅 복종의 제물이 된 사람이 아니냐? 그렇게 돼 있다구요.

예를 들어 말하면, 최고의 고기압권에 최하의 저기압권이 생겨나게 될 때, 여기에는 말할 수 없는 태풍권이 벌어집니다. 거기에 만약에 막는 녀석이 있으면 전부 다 휩쓸려 갑니다.

그것이 얼마나 빠를 것이냐? 높으면 높을수록, 비우면 비울수록, 진공이 되면 될수록 이는 일시에 하나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 통일의 강도라는 것은,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신앙세계에 있어서 복종이라는 술어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태풍이 불어오는 데 있어서 그것이 무서운 태풍일수록 고기압권과 저기압권이 만나는 곳에서 완전히 진공상태가 벌어지면, 이것은 급속도로 빨려 들어 갑니다. 폭포는 흐르는 물보다도 훨씬 빠른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폭포와 같이 내리쏟는 것입니다. 이것을 막아 낼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다 흩어져 나갑니다.

하나님이 고기압권 사랑을 갖고 있고, 인간은 저기압권으로서 흠모의 대상이 되게 된다면, 그 사이에 불어오는 사랑의 힘으로 연결되면 막을 무엇이 있겠느냐? 없는 것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