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1집: 세계평화통일가정당과 우리의 갈 길 1992년 12월 26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220 Search Speeches

가정이면 가정을 '심삼고 장(長)이 있어야 돼

나는 우리 어머니까지도 들이 제긴 사람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교육한 사람이라구요. 내가 머리가 좋았는지 지혜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할아버지를 가만히 보게 되면 우리 어머니한테 기합을 잘 주었다구요. 어머니도 50살이 넘어 가지고 아들딸을 시집 장가까지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뭐 어떻구 어떻구 언제나 말이 많았어요. 내가 가만 들어보니 안 되겠다 이거예요. 그래서 할아버지 나한테 한번 혼나 봐라 이래 가지고 할아버지를 교육했던 것입니다. (웃음)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그렇게 함부로 얘기할 수 있어요?' 이 한마디면 교육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심많은 우리 작은어머니도 내가 교육한 것입니다.

그때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일본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침략하기 위한 금융조합 같은 거예요. 맨 처음에는 그곳에서 이자를 싸게 해서 빚을 주고는 해마다 이자를 올리는 것입니다. 전부 다 빼앗기 위한 작전을 한 거지요. 이러니까 독립군에 군자금을 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작은할아버지는 상해 임시정부의 주요 요원이 되어 있어서 매년 군자금을 보내야 할 텐데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 땅을 전부 저당 잡힌 거예요. 그때 돈으로 그것이 얼마였느냐 하면 7만 원이었습니다. 그때 7만 원이면 대단한 것입니다. 내가 지금 70이 넘었으니 60년 전이라구요. 그때 하숙비가 얼마였느냐 하면 70원이었습니다. 그러니 7만 원이면 대단한 거지요. 그것을 이번에 문용기가 발견한 유서 가운데 나와서 알았지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었다구요.

그런데 우리에게 어떻게 소문이 났느냐? 그 당시에는 기미(期米)라는 게 있었어요. 요즘의 증권과 딱 마찬가지입니다. 증권을 몇십만 개 사고 팔고 했다고 소문났습니다. 그게 도박과 마찬가지예요. 이래 가지고 동생인 목사가 형님네 땅을 전부 저당 잡혀 가지고 투전하다가 패가망신해서 야간 도주했고 이렇게 해서 집을 떠난 거라고 소문이 난 것입니다. 사실은 군자금으로 전부 다 내주었는데 말이에요. 물론 그것을 형님은 알고 있었지요. 형님이랑 전부 의논해 가지고 나라의 군자금으로 보낸 거라구요.

우리 아버지가 장손이었다구요. 그런데 시아버지라는 영감이 말이에요, 나이를 많이 드셨으니 영감이지요. 우리 아버지를 보더라도 아들 장가보내서 며느리를 얻고 다 그런 연령인데 그런 놀음을 했으니 장손 며느리가 좋을 게 뭐예요? 안 그래요?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가 훌륭한 게 그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그럴 수 있지요.' 하고 나라를 위해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걸 수습하기 위해서 모든 재산을 팔아서 형제의 이름으로 빼돌린 것입니다. 한 곳 팔아 가지고는 세 사람의 이름으로 빼돌리고, 이런 놀음을 해야 되었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저당 설정된 것보다도 비싸니까 팔아 가지고 두 술 빼내고 세 술 빼내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는 내가 할 얘기가 아니지요. (웃음) 이래 가지고 우리 집까지 다 저당 잡힌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우리 어머니가 작은어머니의 이름으로 그걸 입적시켜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서류상으로 보면 작은어머니가 주인입니다. 이래 가지고는 우리 옆집에 살다 보니까 조금만 뭘 해도 와 가지고 '형님은 형님만 생각해요? 시아버지를 모시는데도 이렇게 모셔야 될 텐데….' 이러면서 언제나 꼬투리를 잡는 것입니다. 그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형님, 내집에서 살면서 큰소리 하지 말라구요.' 이런 말을 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처리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그때 열세 살인가 그랬어요.

작은어머니가 나를 참 좋아했어요. 잘 통했다구요. 그래서 문용기도 통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고 정성들이면 다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너희 집의 아들딸은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 큰집의 작은애한테 정성을 들이고 도와주면 너희 아들딸도 복 받고 너희 집도 복 받는다.'고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학교 다니다가 집에 왔다 돌아갈 때 차비는 언제든지 작은어머니가 준비해 주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한테는 깍쟁이같이 하면서도 나한테는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만들어서 주었다구요. 그래서 나하고 친했어요.

하루는 작은어머니를 만나 가지고 '작은어머니한테 기분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한 줄 알고 용서해 줄 거예요?' 했더니 '그래! 네가 하자면 무엇이든지 하지.' 하더라구요. '정말 그래요? 틀림없죠?' 하니 '그래!' 했어요. 약속하고 나서 당장 하면 안 된다구요. 몇 개월이 지난 다음에 행동하는 것입니다. 용선이나 용기도 내 졸자였다구요. 그러니까 불러 가지고 '야! 너희 아버지의 도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알구말구!' (웃음) '그거 가져와!' '뭐 하게?' '좋은 게 있다구. 네가 그걸 하면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 줄 테니까 너희 엄마한테 얘기하지 말고 가지고 와. 무슨 문제가 벌어지면 내가 전부 책임질게. 다 약속되어 있으니까 가져와.' 이래 놓고 재판소에 도장을 가지고 가서 전부 다 이전해 버렸다구요.

그게 열네 살이 되기 전입니다. 그다음에 도장을 갖다 주면서 '아버지의 포켓에 넣어 놔.' 이렇게 한 것입니다. 작은어머니는 집이 넘어간 줄도 모르지요. (웃음) 작은어머니가 나중에 알았지만 자기가 약속을 했으니 어떻게 해요? 조건에 딱 잡혔으니 할 수 없는 거지요. 그래도 용선이 어머니가 참 훌륭한 것이 그 놀음을 보고도 욕을 안 해요. '이야, 난 녀석이 난 놀음을 하는구나!' 그러더라구요. 그걸 볼 때 '작은어머니가 욕심은 많지만 한 때 써먹을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쭉 해 나왔다구요.

그래서 작은집 동생들이 욕심이 많아요. 어렸을 때는 지금 신길이와 신원이처럼 한 이불 속에서 자고 그랬다구요. 그러니까 으레 큰집의 작은 형님은 자기들과 제일 가까운 줄 아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통일교회는 우리 형님이 다 만든 것인데, 36가정이 뭐야?' 이러고 다니는 것입니다. 뜻을 모를 때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곁다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성진이 어머니와 똑같아요. 선생님이 다 준비한 것인데 곁다리들이 와 가지고 파먹는다 이거예요. 그걸 청산 못 한다고 선생님을 바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진이 어머니는 그걸 똑똑히 판단해 가지고 쫓아내기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 한 거 아니예요?

그러니 역사 과정에 있어서 희비극의 쌍곡선이 교체되는 역사가 많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사장 짜박지들도 마음대로 쓰는데 우리 형제들이 좀 쓰면 어떠냐 이런 생각을 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발을 못 들여놓게 한 거예요. 그래 가지고 1973년도 이후에야 데려온 거라구요.

자,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장(長)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래서 평상시에도 '이놈!' 하게 되면 전체가 '예!' 할 수 있게끔 수습할 수 있어야 돼요. 비상사태시에 수습할 수 있는 전통적인 기조를 언제든지 남겨놓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