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집: 좋은 사람들 1970년 09월 1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35 Search Speeches

좋은 사람은 다 주고 나서도 " 주고 싶어하" 사람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반드시 인간에 의해 횡적으로 뻗어 나가야 됩니다. 이것은 그림자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림자는 실체의 형태를 대신해 가지고 반응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기로 말하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주고 받으면 반드시 반응이 생기는 것과 같이 주체와 대상이 주고 받으면 반응하는 극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다른 데에서 또 벌어지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다 할 때 선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착하다는 뜻입니다. 그 선하다는 뜻 가운데에는 미의 감정도 들어가 있고, 사랑의 감정도 들어가 있고, 소망의 감정도 들어가 있습니다. 사랑 앞에 대상이 되는 것은 미이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결정되면 반드시 소망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작용을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소망은 거리를 두고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소망은 반드시 관계를 가지게 될 때 나타나기 때문에 여기에는 거리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착하다고 하는 데에는 반드시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착해지지 않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아들딸을 귀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착하다 할 때는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착한 것은 미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착한 애기는 예쁘지요.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을 유발시키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상적인 가치를 결정지음과 동시에 소망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체와 대상은 목적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목적관을 중심삼고 변증법이 나오게 되었고, 여기에서 공산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을 보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나를 사랑하시옵소서' 하고 자기를 들고 나가서는 안 됩니다. 자기 속에서 세계가 빛나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자기 속에 들어와 살기를 바란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시겠는가 생각해 보세요.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바늘구멍 같은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 사신다면 얼마나 답답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욕심은 '하나님, 내 마음에 들어오셔서 내 뜻대로 하시옵소서'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를 하더라도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자기의 뜻이 없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을 왜 복귀해야 되느냐? 횡적인 주체와 대상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가인 아벨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러려면 주체와 대상이 서로 주고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원칙이라는 겁니다. 주고 받지 못하면 횡적인 면이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가인 아벨 복귀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타락하지 않았더라도 지상에는 반드시 두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가 잘못하여 부모 대에 소망을 잃어버리면 자식 대에 소망을 바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그 자식 대에도 소망을 못 이루면 3대인 증손자 대에, 3대에도 못 이루면 4대에, 4대에도 못 이루면 10대, 백 대를 거쳐 서라도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서로가 상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지배할 수 있고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선의 주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충의 요인을 들고 나와 가지고 강압적인 완력으로 그 기준을 발전시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그 기준에 흡수되고 화합될 수 있는 주체적 권한을 가진 하나의 국가관, 또는 세계관을 지닌 사상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보면 자기를 언제나 사랑합니다. 그저 자기만 사랑한다는 거예요. 타락한 자리에서 내가 살고 있는 한 찾아다녀야하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면 그만큼 대접을 하라는 것입니다. (녹음이 약간 끊겼음)

자신이 선하더라도 선을 바랄 수 없는 자리에서 받으면 그것은 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받으나 마나입니다. 그러니 소화할 수 있는 자리에서 받아야 됩니다. 나 자신이 악한 입장에서 받은 모든 것은 죄악입니다. 다 주고 나서도 더 주고 싶다 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