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집: 중요한 인물 1973년 06월 10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182 Search Speeches

전체를 위하" 길이 세계를 살릴 수 있" 혁명의 기점

오늘날 부분적인 입장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분석적인 과학 문명의 영향을 받아 가지고 개인주의 사상도 발전돼 나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국가가 있기 전에 '나'를 생각한다는 거예요. 가정이 있기 전에 '나'를 생각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있기 전에 '나'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인간 세상에 새로운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나'라는 관념을 어떻게 타파하느냐? 여기서부터 혁명의 기준은 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혁명을 해야 되느냐? 무자비하게 혁명해야 됩니다. 무자비하게 혁명하면 할수록 무자비한 승리적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대해서 '너, 지금까지 잘못 봤으니, 전부 다 잘못 봤으니 그것을 부정하고 새로이 봐라!' 이래야 되겠다구요. 듣는 데도 역시 그래야 되겠습니다. 말하는 데도 역시 나를 옹호하기 위한 말을 했지만 전체를 옹호하기 위한 반대의 말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생각도 자기를 옹호하고 자기만을 위한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전부 다 혁명해 버려야 되겠습니다. 행동도 자기를 위한 행동을 했지만 이것을 뜯어고쳐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혁명하고 나선 그런 자리에 서면 지금 세상에서도 새로운 중심으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결론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냐 이거예요? 우리는 뭘 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냐? 국가와 세계를 혁명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되기 전에 나를 먼저 혁명하기 위해서 모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결국은, 환경적인 모든 가치를 나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그 가치적 범위를 나보다도 넓게 할 수 있는 여기서부터 우리는 전체의 가치를 세우기 위해서 나를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 이래 지금까지 인간들이 추구해 나오던 방향과 반대적인 것인데, 이 길을 따라가지 않고는 절망시대에 있는 인간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성싶은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기 위해서 모였어요?「예」 예수님 같은 양반은 무얼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왔느냐 이거예요. 이걸 하려고 왔다구요, 이걸. 살기를 바라고, 중심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좋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죽어라 이거예요. 때려 잡아라 이거예요. 개인을 위주로 한 중심 사상으로 말미암아 역사를 망칠 수 있게 됐으면 그 반대의 길이 아니고서는 살릴 수 있는 길이 없다구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말도 반대의 말이라구요. 반대의 말이라구요.

그게 무슨 사상이냐? 자기를 중심삼고 개인을 존중하고, 개인을 보다 중심적인 가치 존재로 인정하는 이 세상을 타파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개인을 위해라' 할 때는 전부 다 개인 하나를 놓고 헤어져 갔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를 높여 주겠다'고 할 때는 다 좋아한다구요.

그러면 이제 인류역사의 이 끝날에,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시대를 거쳐온 인류를, 절망 상태에 부딪친 인류를 어떻게 살 길로 안내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그것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적인 이 사상을 타파해 버리고, 전체를 위한 사상으로 전환시켜 놓으면 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전환시켜 놓느냐 하는 것이 이 세계가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것이 어떤 길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윤곽을 잡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자기를 위하는 길이냐, 전체를 위하는 길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어떤 길이예요?「전체를 위하는 길입니다」 이것만이 세계를 살릴 수 있는 혁명의 기점입니다. 이걸 하지 않고는 모든 것이 틀어진다구요. 모든 것이 불가능이예요. 여러분들은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좋기 위해서다' 이랬다구요. '먹는 것도 내가 잘되기 위해 먹고, 내가 배우는 것도 내가 훌륭하게 되기 위해 배운다'고 했다구요. 그런 사고방식들을 전부 다 버려라 이거예요.

'나'라는 관념을 어떻게 빼느냐가 문제라구요. 내가 왕이 돼 있다구요. 내가 중심이 돼 있다구요. 내가 중요한 위치에 있다구요. 그러니까 이것들이 전부 다 싸울 수밖에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태어난 것은 형제를 위해서고, 당신을 위해서고, 전체를 위해서다' 할 수 있는 사상을 철두철미하게 가져야 합니다.

'내가 난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고, 가정을 위해서고, 전체를 위해서다' 하는 관념으로 어떻게 바꿔서 갖느냐 하는 문제가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제일 빠른 길입니다. 여러분들도 선생님을 대하게 될 때, 선생님이 선생님 자기만을 위하면 선생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거예요. 내가 지금 나 자신을 보게 되면, 미국에 와서 이러지 않아도 쓸 돈, 먹을 것…. 여기서 암만 일을 잘했댔자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구요. 내가 먹으려면 먹을 수 있고, 뭐 부러운 게 없다구요. 그런데 결국은 여기 와서 뭐 고생을 하고, 돈을 쓰고 이러고 있냐는 거예요. 이익 나는 것이 뭐 있느냐 이거예요. 어디 순회 가게 되면…. 미국 사람하고 나하고 인간적으로 보면 무슨 관계가 있어요? 여기 와 가지고 여러분이 일을 못하게 되면, '이 녀석들, 왜 일을 그와 같이 해 놨어?' 하면서 쥐어박고, 눈을 부릅뜨고 '이게 뭐야!' 하며 욕을 하는데 그건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여기 독일 사람도 있고, 불란서 사람도 있고, 이태리 사람도 있고, 영국 사람도 있는데, '오라, 이녀석들아, 오라구' 해 가지고 이들을 데려다가 뭘하자는 거예요? 선생님을 위해서 일하라는 거예요? 자기 나라를 위해서 일하라는 거예요, 이게? 불란서도 아니고, 영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독일도 아니고 하나의 인류를 위해서, 하나의 세계를 위해서 다 뭉쳐 가지고 하라는 거라구요. 다르다구요.

독일 사람의 눈을 볼 때, 그것이 독일 사람의 눈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구요. 그 몸뚱이를 독일 사람의 몸뚱이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불란서 사람을 불란서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불란서 사람, 독일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로 보자 이거예요. 내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먼 나라의 형제를 만났기 때문에, 먼거리에 있는 형제를 만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이 있는데, 그것을 극복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심정적 무대에서 보다 넓은 인격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라는 거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