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집: 자녀의 날은 어떠한 날인가 1968년 11월 2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01 Search Speeches

타락한 인간-게 있어서 명절 '의 명절은 자녀의 날

복귀섭리의 주류를 이루는 심정사상의 바탕이 되는 것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변하던가요? 하나님도, 우리의 수백 대 아버지 어머니도 그러했으니, 그 사랑을 침범하는 존재는 이 땅 위에 존속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천지가 그 사랑을 찾기 원하고, 예수님도 그 사랑을 찾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신랑이 온다면 신부가 나와야지요. 그래야 가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났나? '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여자로 태어난 까닭이 무엇입니까? 시집가기 위한 것입니다. 시집간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남자를 맞아 사랑을 하고 그래서 부부를 이루어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존재물이든 그 과정을 밟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오늘날 불교나 기독교가 흥한 것은 남자창조시대권내에, 그 천운권내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이제는 대처승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에 신부와 수녀들만 있다면 망합니다. 만약 로마 교황에게 가인 아벨 두 아들이 있다면 이들을 `장가를 보내야 됩니까, 안 보내야 됩니까? '하고 물을 때 `안 보내야 됩니다' 하는 패들은 전부 망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만나려고 태어났고, 남자는 여자를 만나려고 태어났지요? 그것이 최고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칙을 따라서 축복권을 찾아 나가야 됩니다. 최고의 진리권을 이탈하는 것은 최고의 악입니다. 최고의 악.

사랑은 콤파스의 중심대와 같아서 옮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지식에 대한 부모의 그 사랑의 심정적 기준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사탄이 점령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악한 사람이라도 자식에게 `야! 내가 사람 때려잡을 때 기분 좋더라. 너희들도 사람을 때려잡아 봐라'하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런 부모가 있습니까? 자기는 악한 강도일망정 자식에게는 `선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 하더라도 그 법도에는 순응하여야 됩니다. 그것이 천법입니다. 악도 그것을 점령할 수는 없습니다. 악은 언제나 상대적인 입장이지 중심은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것에 주시하셨고 예수도 그것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세우려 하신 아들과 딸의 자리를 찾지 않고는 그 높은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찾은 날을 기념하고, 이것을 결정지을 수 있게 한 것이 통일교회 선생님의 공적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앞으로의 역사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날과 자녀의 날과 만물의 날과 하나님의 날을 찾아 세운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명절 중 제일 큰 명절은 부모의 날보다도 자녀의 날입니다. 알겠어요?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날은 무슨 날이라고요? 「자녀의 날입니다」 그날은 부모의 권한을 다시 찾는 날이요, 6천년 동안 인류 역사를 유린하던 사탄을 물리치고 승리의 깃발을 들고 나타나는 날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날을 맞아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하늘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교인들이라도 교인들끼리만 가서는 하늘 부모를 모실 수 없습니다. 다리를 놓아서 모셔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전부 영계에 가 있는 사람들에게 다리를 놓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날은 통일교인들만이 아니라 앞으로 세계 만민이 영원히 지켜야 될 날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문제가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제일 복된 날이 무슨 날이라구요? 자녀의 날입니다. 그 다음에 자녀의 날의 영광을 지니고 그 권위를 가진 승리의 왕자, 왕녀들이 부모를 모실 수 있는 날이 부모의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탕감노정을 가야 됩니다. 그런데 요즈음 가만히 보면 탕감의 길을 똑바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똑똑히 다 가르쳐 줬는데도 가르쳐준 대로 똑바로 못 가면 선생님은 책임을 질 수가 없습니다.

영계에 가서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 제가 청파동 교회 때부터 선생님을 뵙지 않았습니까? '해도 그때는 선생님은 원리의 안경을 끼고 볼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이 걸어온 노정으로서의 안경을 끼고 볼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맞으면 받아들일 것이고,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복귀섭리의 노정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도 나를 보실 때에 그런 안경을 끼고 보시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거기 맞추려고 이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가지고는 큰소리를 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