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집: 섭리의 방향 1963년 08월 1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18 Search Speeches

외적 창조가 먼저" 내적 창조" 나'

이러한 이념의 발판을 거쳐 역사성을 대표하고 시대성을 대표하고 미래를 대표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이 구현해야 할 요건의 내용을 지닐 수 있는, 아까 말한 3대의 심정, 사정, 소원이 같이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찾아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되려면 그런 개인으로부터 가정, 민족, 국가, 세계를 거쳐 나가는 신앙의 대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전통적인 신앙의 내용을 전부 다 평면적인 인연의 가치적인 내용으로 두고 볼 때, '야, 너는 아브라함 주고도 바꿀 수 없어. 모세를 주고도 바꿀 수 없어. 우주하고도 바꿀 수 없다. 그런 심정적인 자격자, 심정적인 신앙의 자세를 갖췄다' 라고 할 수 있는 종교적인 신앙의 대표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그마치 세계적인 하나의 정상의 섭리의 뜻 앞에 있으면서 종교를 책임지고 지도한다는 사람은 사상주의자 앞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예요. 사상주의자들이 그들 앞에 머리 숙여야 됩니다. 하나님주의 앞에 누가 머리 들겠느냐 이거예요. 인간의 주의로서 이 세계 주의 앞에 머리 들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 주의를 주장하는 그들이 인간의 어떤 사상과 주의 앞에 머리숙여 가지고 되겠느냐 이겁니다. 안 된다구요.

종교의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충효사상 이상의 체계적이요, 논리적이요, 실증적인 내용을 갖출 수 있는 신앙이론이 기본이 되어서 세계관적인 사상이념을 오늘날 이 역사 앞에 제시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죽었어요, 죽었다구요. 하나님이 죽었으니 종교가 무슨 종교예요? 종교인들은 다 죽어야 돼요.

하나님이 죽지 않았다면 필시 그런 때가 올 것이다 이거예요. 그것은 역사를 봐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거예요. 그것을 무엇을 봐서 알 수 있느냐? 역사를 봐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우리가 천지창조의 이치를 가만 보게 될 때, 핵심을 먼저 만들어 놓고 상대를 만든 것이 아니예요. 핵심을 만들어 놓기 전에 상대적인 요건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흙을 먼저 만들어 놓고…. 외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여 내적인 것을 세워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게 천지창조의 이치라는 거라구요. 현재 것보다 더 큰 것, 무가치한 데서 더 가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구요. 천지창조의 이치가 그렇다 이거예요. 오늘날 인간창조를 보게 될 때에도, 인간을 짓게 될 때에는 몸뚱이를 먼저 만들어 놓고 영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아까 '섭리적인 방향' 이라고 하는 제목을 붙였는데, 원래 6천 년 역사의 섭리의 방향을 두고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 외적인 섭리와 내적인 섭리를 결정지어 가지고 나온 하나의 사건을 종교라고 했습니다.

아담가정을 두고 볼 때, 제물을 드리기 위한 준비는 외적 창조형입니다. 그리고 제물을 드리는 그 순간에는 내적 기준을 완결시켜 가지고 하나의 그 가정 가정에 있어서 완결시킬 승리적인 결정을 지어야 됩니다. 가인과 아벨은 내적 창조의 수습을 하였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통해 협조해 가지고 하나님이 제물이라는 것을 개재시켜 놓고 내적인 가치를 결정해 나온 것입니다. 전부 다 내적 창조입니다.

노아의 가정을 두고 볼 때도 역시 120년 동안 외적인 환경에 살았고 40일 심판으로써 내적인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40일 심판한 그 과정에서 40일이 외적이라면 노아의 가정에서 한 역사의 내적 기준을 완결해 넘어가야 된다 이거예요.

이것은 아브라함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지고 축복의 땅, 앞으로 소망의 하란세계로 내몰려 가지고 혹은 섭리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애급까지 갔다 와 가지고 그걸 한 후에 내적인 결정을 한 것입니다, 전부. 아브라함도 그랬고 야곱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21년 동안 내적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건너올 때에 얍복강에서 내적 결정을 했다는 거예요.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도 바로 궁중에서 40년, 그다음에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외적 결정을 해 가지고 그다음에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나가는 내적 결정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외적인 33년 공생애노정 위에 내적 결정의 여건을 완결하려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부 다 외적 창조가 먼저요, 내적 창조는 나중입니다. 내적인 문제가 결정되기 전에 외적인 모든 문제를 사방성으로 갖추어 놓고 사방성의 종대 순과 같은 기준을 결정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완전한 가치적인 기준을 그 환경에서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 개인적, 가정적, 민족적, 세계적 혹은 천주적인 범위와 환경은 다를망정 섭리는 그렇게 해 나온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