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집: 나라의 뿌리와 향토애 1988년 08월 28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66 Search Speeches

선생님의 일생은 전부 개척이다

손대오, 오늘 안 왔나? 「지금 태국에 가 있습니다」 아, 태국에 갔구만.

`아이구, 선생님이 빨리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해요? (웃음) 3년은 지나야 돼요. 몇 년째요? 「오늘이 2년 6개월이 되는 날입니다」 2년 6개월이 돼? 3년이 가까워 오는구만. 「예」 그래 3년이 되면 눈을 부라리면서 `선생님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도와줘야지요' 그럴 작정이예요? 「아닙니다」 3년이 30년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사랑의 세계는 거리와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겁니다. 3년 사랑을 그려 가는 사람이 될 것이 아니라 30년 사랑을 그려 가는 사람이 되라구요. `나는 3년 사랑보다 30년 사랑을 그려 가겠다. 1대 사랑보다도 3대 사랑을 그려 가겠다' 하는 후손을 남기면 그 후손은 망하지 않아요.

내가 일생 동안 고생했지만, 내가 호화스러운 높은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탕감하고 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복을 남겨 두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이 하는 그 고생과 더불어 선생님이 높이 올라가는 그런 민족적 존경심을 여러분과 같은 자리에서…. 환희의 한날을, 국가의 해방과 더불어 환희의 한날을 바라는 것이 선생님의 희망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선생님은 해방을 맞이하고도 만세를 불러 보지 못했어요. (녹음이 잠시 끊김) 재탕감길을 가야 될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 길을 넘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하에 있으면서 말이예요. 선생님이 고등학교, 중학교, 소학교 나온 녀석들이 어디…. 졸업할 때 선생님은 학부형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정주에 있는 그때는 보통학교지요. 큰 학교라구요. 경의선을 타고 가자면 평양 다음에는 정주예요. 정주에는 오산고등학교가 있어 이승훈씨의 전통을 받들어 가지고…. 정주에서 인물이 많이 났지요. 일본 사람들이 와 가지고 한국 사람들을 전부 다 차별하고 말이예요. 그래서 들이 깠다구요, 내가. 선생이란 것들 꺼떡꺼떡하길래 내가 느끼는 바대로 솔직히 들이 까버린 거예요.

요전에 우리 일본 마사회의 감독을 하는 사람이…. (녹음이 잠시 끊김) 그러면서 동창생이라는데 그걸 어떻게 믿나요?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하이구, 졸업식할 때 나가서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됐기 때문에 상당히 요주의 인물이 되었었다'라고 말이예요.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보니까 사실이예요. 그래서 `아, 내 동창생이로구나' 그랬지요. (웃으심)

그래 가지고 일본에 가려고 전부 다…. 원수의 세계를 알아야 돼요. 원수의 세계를 알아야 된다구요. 그때는 도항증, 바다를 건넌다는 도항증이 있었어요. 전부 다 이승훈 선생을 통해 가지고 들이 공격해 놓았더니 문제가 됐다구요.

나는 누가 나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내가 전부 다 했다구요. 선생님의 일생은 전부 개척이예요. 전부 개척입니다. 공부도 내 자력으로 했고, 성진 어머니와 결혼한 것도 내 자신이 했다구요. 들러리로부터 주례하는 사람까지 전부 다 내가…. 이호빈 목사라고 옛날에 중앙신학교, 지금 용인의 사회복지대학을 건립한 이름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신교로서….

그렇다구요. 자기들이 전부 다 번복을 하려면 그 세계의 권위 있는 사람을 다 훑어 버려야 돼요. 모든 면에서 이름이 있고 다 그랬기 때문에 잡아다가…. 평양에 가 가지고 잡아온 거예요. `날아오소' 해 가지고 말이예요. 전부 개척이라구요. 이런 얘기는 내가 처음 하는 거예요.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구요. 그런 얘기 좀 해주면 좋겠지요? 「예」 배고파요? (웃음) 「아닙니다」 이거 타산주의자 각성시켜야 되겠다구요. 재미있는 얘기를 하니 밥 먹고 싶지 않다, 이런 소리를 하고 있다구요. 배고파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