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집: 수난의 정상 1977년 06월 26일, 미국 Page #32 Search Speeches

하나님이 행복하면 모" 존재도 고통을 -어날 수 있어

고난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것이다 이거예요. 고난이라는 것은 올라가는 것이 아니예요. 발전이 아니라, 후퇴며 내려가는 것입니다. 고난의 시간은 존재의 기준을 무시하고 파멸의 기준에 접근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존재든지 그것을 원치 않는다구요.

우리 개인들이 그러하기 때문에. 만약에 이 우주를 지으신 주인이 있다면 주인도 마찬가지의 입장일 것입니다. 만일에 이 우주의 중심되는 하나님이 고통 가운데 있다면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은 고통권 내에 머물기 마련입니다.

자, 우리 교회를 두고 보면, 우리 교회에 있어서 중심되는 선생님이 고난을 받게 되면 여러분들도 그 고난권 내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만이 아니고 전체를 대표했기 때문에 전체는 선생님과 같은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정이나 사회단체나 세계의 어떤 주권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라는 한 국가를 두고 보면, 미국 국가에 대통령이 고통을 안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 어떤 사회단체라든가. 가정이라든가, 개인들은 고통받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통을 안 받는 대통령은 자기의 국민이라든가 어떤 단체가 고통받고 있으면 책임권 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고통스러운 일이 있거들랑 대통령이 간접적 책임이라도 짊어지고 전체의 고통권을 해방시키기 위한 책임적 소행이 반드시 남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에는 중심되는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어야 되며 혹은 단체면 단체의 장이 있고 단체에 소속한 요원이 있어야 되며, 통일교회로 말하면 통일교회 중심자가 있고 통일교인이 있어야 되며, 나라로 말하면 나라의 대통령이 있고 국민이 있어야 되며. 세계로 말하면 세계는 어떤 주체자가 있어야 되며 그 세계의 주체자에게 속하는 인민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자,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어떠한 고통을 더 중요시해야 되느냐? 고통의 단계라든가 고통의 차이를 생각해 볼 때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이냐 이거예요. 가정으로 말하면, 가정의 식구가 고난을 당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그 가정의 중심되는 부모가 고통의 자리, 고난의 자리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그것을 주관하고 벗어날 수 있으면 그 고통의 자리를 모면할 수있는 길은 모색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두고 보게 된다면, 통일교회 여러분이 고통받는 입장에 있더라도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고통 안 받는 입장이면 여러분의 모든 고통을 구해 줄 수 있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한 나라의 대통령은 고통스런 자리에 있지 않고 국민이 고통 받는 자리에 있으면 그것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이 우주의 중심된 하나님이 고통을 안 받으면 그 치하에 있는 모든 국민이 고통받더라도 해방받을 길이 있다구요.

그러나 이 우주의 중심인 하나님이 고통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이건 구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누가 구하겠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정을 더 잘 알고, 하나님의 사정을 아는 입장 이상의 그 무엇을 갖기 전에는 고통의 자리를 모면할 길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우주의 중심되는 하나님이 기뻐하고 행복해 할 수 있으면, 그 외의 고통스러운 모든 존재는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결론을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어디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고통받는 입장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통 받는 입장을 어떻게든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