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집: 우리는 주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되자 1957년 06월 1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4 Search Speeches

전체를 위한 희생의 가치

뿌린 대로 거두어지는 것이 천리원칙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역사의 출발때부터 뿌려진 것도 그대로 거두어지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역사상에 뿌려졌던 모든 것을 그대로 거두는 날이 끝날이요, 영광의 한날을 맞을 수 있는 날이 끝날임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을 배반하던 이스라엘민족과 같은 입장에 서서는 안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지향하고 있는 신앙의 방향과 목표, 그리고 여러분들의 생활환경은 6천년 동안 섭리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하고, 예수와 성신이 재촉하고 있는 그 방향에 부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여기에 일치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고 안 오시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여러분 자체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복받기를 원합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갈 길을 다 간 후에, 싸울 것을 다 싸운 후에야 복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길을 거쳐서 부활하셨듯이 여러분도 어려운 고난의 길을 거친 후에야 소망의 한날, 부활의 한날, 기쁨의 한날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자기의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눅 17:33)"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바알신을 섬기자, 엘리야가 여호와 앞에 나가 자기를 죽여주기를 간청하면서 `나만 남았나이다'라고 호소했는데, 그때 여호와께서 바알에게 굴복하지 않은 7천명을 남겨 두었다고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교계는 신앙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고, 혼돈되어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때에 처해 있는 여러분은 민족을 붙안고 여호와께 호소하던 엘리야의 심정과 통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민족이 먹을 것이 없고,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여 광야에서 40년간을 헤맬 때, 시내산에 올라 40주야를 금식하며 여호와께 호소하던 모세의 심정과도 통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자기 일신의 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자신을 위해서 보낸 것이 아니라 민족과 세계를 위해서 보내셨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것입니다. 이제 세계적인 가나안 복지를 바라보며 나가는 우리들도 이러한 모세의 심정을 이어받아야 할 택함받은 이스라엘백성이라는 것을 자각하며 전진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여러분, 이제 제3자의 입장에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한번 비판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느 한날 예수님처럼 민족을 위해 슬퍼한 적이 있습니까? 어느 한날 예수님처럼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또, 유대민족이 마음대로 자고, 마음대로 놀고 있을 때에도 민족을 위해 40주야간 기도하면서 남모르는 가운데 눈물로 무릎을 적셨던 모세와 같이 민족을 위해 눈물의 제단을 쌓은 적이 있습니까?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하고 여러 형태의 문화를 갖추게 된 것도 현재의 인간들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많은 성도들이 죽음을 각오하면서 외롭고 험난한 비탈길을 거쳐왔기 때문이요, 움막이나 토굴같이 외로운 곳에서도 외로움을 이기며 죄악과 싸워 왔기 때문이며, 끊임없이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해 왔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