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집: 사랑의 승리자 1977년 10월 01일, 미국 파사데나공관 Page #228 Search Speeches

초창기 한국 통일교회 식구"의 고생

36가정 패들이 여기 있구만. 예전엔 선생님이 '고생해라. 고생해라' 그랬는데, 한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저 고맙다는 것을 약간 아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고맙고 그렇다는 거예요. 20년 후에 깨달은 거예요, 20년 후에. 보라구요.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고생에 지치고 지긋지긋하리만큼, 꼬부라지리만큼 고생해서 지쳤는데 거기에 또 고생을 하라니 죽을 지경이지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들 미국 사람들에게 고생이 뭐예요? 고생스러운 것이 뭐예요, 여러분들에게? 뭐가 고생이예요? 먹는 것 있지, 입는 것 있지, 잘 곳이 있지, 뭐가 고생이예요? 자 어디 가서 옷 버리면서 하루만 열심히 일 해주면 '너 가지 말고 우리 집 일 좀 해다오' 하고 전부 다 붙드는 곳인데, 무엇이 고통이예요? 여러분들 그렇잖아요?「예」 하루 벌면 보름도 살 수 있고, 한 달도 살 수 있다는 거예요. 한 시간에 삼 불씩 하더라도 열 시간이면 삼십 불이 아니예요, 삼십 불? 그러면 뭐 한 달 동안은 넉넉히 먹고 산다구요. 점심하고 저녁은 집에 가서 햄버거 먹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미국 청년들은 말하길 '거 배고프면 밥 먹지 왜 배가 고프냐?고 합니다. 어디를 가든, 호텔에 가도 테이블에는 벌써 가다빵이 이렇게 쌓여 있고, 또 그것을 얼마든지 주워 먹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고 말이예요, 그 가다빵을 자른 것은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도 먹을 수 있는데 왜 배고프겠냐구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거예요. 배고픈 것처럼 처참한 것이 없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요?「예」

그리고 옷이 없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몰라요. 옷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를 거라구요. 여러분 미국 사람들이 옷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알아요, 옷에 대해서? 그거 얼마? 5불이나 7불만 주면 즈봉을 살 수 있고 우와기를 사서 입을 수 있으니 옷 걱정은 안 한다구요. 여러분들 옷 때문에 고생해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고생이 무슨 고생이예요?

보라구요. 남의 결혼식에 예복을 입고 가야 할 텐데 예복은 없고, 안 가면 안 될 입장에서 그 예복 한 벌이 한 수억만 금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것을 구할래야 구할 수 없을 때의 비참한 아픔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걸 모르지요? 먹을 것에 대해서 걱정해 봤어요? 그다음엔 뭐 어디든지 집에 가게 되면 말이예요. 뭐 고래등 같은 집에 가도 할머니 할아버지 둘이 살고 있다구요. 둘이 비둘기같이 살고 있다구요. 그 집에 가서 하룻 저녁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삼십 분만 재미있는 이야기나 자기의 보고를 해주면, 그들이 붙들고 '아이고! 내 침대 내줄 테니까 여기서 자고 가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이예요, 여긴. 그게 가능해요, 안 해요?「가능합니다」 한국 같은 데에서는 정문으로 쫓아내면 뒷문으로 가 가지고, 몰래 숨어 들어가서 자고, 맞고 쫓겨나면서라도 하룻밤 자는 놀음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헛간에서라도 하룻밤 자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도 그것도 안 된다구요. 힘들다구요. 그것이 다 해결되면 뭐가 어려워요, 뭐가?

보라구요. 한국에서 개척지에 나가 전도하던 그때는 돈을 하루 벌어서 하루 살기가 힘들었어요. 하루 벌어서 한 끼 먹고 살기가 힘들었어요. 젊은 사람들이 나가서 다니는데 길을 가다가 이렇게 헛다리를 딛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 거예요. 그런 놀음을 하면서 개척시대에 우리 전도사들이 책임자가 되어서 어떤 동네에 개척을 나갔는데, 먹을 것은 없지 일은 할 수 있지만 일한다면 '여기에 일 하러 왔다'며 동네에 소문나고 핍박이 더하겠으니 할수없이 백리 길 이상을 가 가지고 일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니 따르는 식구들이 전부 다…. 책임자가 뭐 본부에서 돈을 갖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정을 갖고 개척전도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자기의 사정을 죽으면 죽었지 절대 얘기를 안 하거든요. 그렇게 했으니 알 수가 있느냐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6개월 지나고 일년이 지나고 나서 알아 가지고는 붙들고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도시락을 갖다 먹이는 운동이 생겼다구요. 그러니 그 밥을 먹어야 할 지도자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해요? 또, 밥을 주고 간 그 학생이 학교에 가서 밥을 굶을 것을 얼마나 생각하겠어요? 이러한 가운데서 서로서로 그걸 극복하면서 '우리는 죽더라도 뜻을 이루자' 하며 심정적 유대감에 젖어 있었던 겁니다.

그래 가지고 학교에 가는 데는…. 엊그제까지, 통일교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누구보다도 좋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던 사람이 통일교회에 들어간 다음에는 도시락을 안 가지고 오고 말이예요, 매일 점심때에는 저 혼자 교정에 몰래 숨어 있다가 교실에 오는 것이 동무들에게 발견되곤 했다는 거라구요. 왜 그러냐면 자기 부모한테 알려지면 큰일나거든. 한 두 번이 아니고 계속적으로 그런 놀음을 해야 되겠으니 믿지 않는 친구들이 어머니에게 가서 '당신의 아들딸들이 점심을 잘 가지고 다니더니 요즈음 통일교회에 들어간 다음부터는 점심도 안 싸주니 부모들이 왜 그러냐? 통일교회의 사람들은 다 그거 뭐 사람이 아니냐? 아들은 아들 대접을 하고 딸은 딸 대접을 해야 되는 것인데 왜 그러냐?며 항의하는 이런 놀음이 벌어진다구요. 그러니 그 부모는 아들딸에게 '너 학교에서 도시락을 안 먹는다던데 어떻게 된 것이냐?라고 물어 보게 된다구요. 물어 보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이런데도 불구하고 그다음에 부모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이놈의 자식들!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전부 다 우리 아들딸의 도시락을 빼앗아 먹고 착취해 먹고 피살을 빨아먹는 흡혈귀다' 하며 반대를 한 겁니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전국적으로. 그러니 통일교인이 온다 하면 아들 딸들의 피 빨아먹는 사람이 온다고 해 가지고, 동네에서 작당을 해 가지고 그에게 모둠매를 치질 않나. 별의별 짓을 다 한 거예요. 더우기나 전국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양을 빼앗아 가는 이리떼들이 들어온다고 하며 전부 다 짝패가 되어서 별의별 짓을 다 했다구요, 별의별 짓을. 그러한 환경에서 그들을 지도하고 있던 통일교회 선생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어요?

자, 그러니 '저들이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통일교회의 지도자라면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이래 가지고 내 힘으로 돈을 번 거예요. 내가 공장을 세우면 24시간 공장에 가서 일도 하고, 내 아이디어도 제공하고, 전부 내 손으로…. 그러면서 장래의 기반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내가 경제문제에 대해서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