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집: 나의 감사 1986년 01월 19일, 한국 본부교회 Page #86 Search Speeches

충신의 길은 효도의 길보다 어려워

기성교회 목사들 말이에요, 요즘도 반대하는 패들 몇 사람 있지요? 그 사람들은 뭐냐 하면 해방신학을 믿는 사람들이에요. 이건 공산당의 앞잡이에요. 레버런 문을 적극적으로 파괴하려고 하는 소련 KGB의 마수에 걸려 있는 녀석들이라구요. 몇 녀석들, 이거 두고 봐라 이겁니다. 조금만 더 지나가면 이 승공연합 단체, 벌떼 같은 것들이 '뭐야, 뭐라고? 당신이 우리 문총재를 반대했지, 이 자식아?' 이렇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하지 말래도 들이 제기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거예요. 요즘에 들어 보니까 뭐 그랬다는 소문이 나서,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도 자꾸 그런다구요. (웃음. 박수) 나는 가만히 있는데도, 그러니 그거 뭐 처리하려고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고…. 그거 내가 처치했다면 얼마나 걱정하고, 자더라도 다리를 꼬고 자야 되고, 밥을 못 먹고 따오기 숨을 쉬어야 할 텐데, 나는 그저 옛날이나 오늘이나 이렇게 사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사는데, 세상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자기들끼리 처리해 버리더라 이겁니다. 그게 얼마나 멋진 작전이에요? (박수)

어제도 워싱턴 타임즈의 중요한 책임자들이 왔어요. 워싱턴 타임즈 편집국장하고 워싱턴 타임즈 부사장이 시급히 해야 할 계획을 세워 가지고 왔어요. 내가 사인하지 않으면 오케이가 안 된다구요. 워싱턴 타임즈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구요. 예산 편성에도 내가 동그라미 딱 해 놓아야 돈이 '좋다!' 하고 가지, 내가 안 하면 돈이 싫다고 워싱턴 타임즈에 안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할 수 있어요? 그러니 그걸 잘 아는 패들이 와 가지고는…. 그래도 저라는 사람이요, 미국에서 유명한 사람이라구요. 내가 한국에 오니까 한국에 따라오데요. 한국에 따라와 가지고는 말이에요. 참 그런 걸 가만히 볼 때 세상이 참…. 그 사람들이 왜? 그 사람들이 왜?

미국에 있어서 레버런 문이 유명해졌습니다. 레버런 문은 본래 유명한 사람이지요, 본래가. (웃음. 박수) 본래 유명하다구요. 이제 와서 유명해졌다고 해도 뭐 별로, 별스럽게 나는 생각도 안 해요. 본래 내가 그런 사람이에요. (웃음)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그렇지, 몰라서. 모른다면 할 수 없는 거예요, 암만 그런 사람이라도.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라도 자기가 태어났을 때 그들이 보지 못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다는 말만 듣고 보지는 못했다고 합시다. 뭐 어쩌다 저쩌다가 시골 장거리에 한번 가게 되어 어떤 국수집에 들어갔는데 어떤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마를 맞대고 앉아 있는 거예요. 할머니 할아버지 둘이 뭘 먹는 것을 보니 질질 흘리더라 이거예요. 자리가 많지 않아서 딱 끼어서 먹다가 보니 기분이 언짢아서 '할머니 할아버지, 그거 좀 흘리지 않고 먹었으면 좋겠소' 하고 말을 한마디 했다가 '요놈의 자식! 어른을 못 알아주고…' 하고 때려서 한대 맞았다면 어떨까요? '그놈의 할머니 가다가 뒈지면 좋겠다. 죽으면 좋겠다'라고 자기 생각할 대로 다 했다 이겁니다. 아, 이래 가지고 떡 있는데, 자기 아버지가 성큼성큼 들어오는 거예요. 들어와서 '야, 너 여기서 뭘 먹노? 점심 먹는구나' 하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요, 점심 먹어요' 하고 대답했는데 또 아버지가 '그래 맛있어?' 하고 물어서 '맛있는 게 뭐예요? 저 옆에 있는 할망구 할아버지 두 분 때문에 잡쳤소, 퉤퉤퉤!' 했는데, 아버지가 떡 보니 자기 어머니 아버지라 '어! 어머니 아버지, 어떻게 된 거예요?' 이랬다고 하자구요. 그게 누구냐 하면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라 이거예요. (웃음) 그럴 수도 있어요. 이런 장면이 영화에는 많이 나오는 거예요. (웃음) 안 그래요? 그것이 재미있는 거예요.

자, 그렇게 되면 분하던 그 손녀딸…. 남자들은 둔하기 때문에, 둔하기 때문에 뭐 국수 오래기 흘린다고 불평은 안 해요. 여자는 틀림없이 불평해요. 그러한 손녀 혹은 딸, 그 꼴이 어떻게 되겠어요? 뾰로통하던 그 얼굴이 어떻게 되겠어요? 얼마나 거북하겠어요?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아버지가 '얘가 내 딸이요' 할 때 그 할머니 할아버지는 기분이 나쁘다 이거예요. 자기의 손녀딸이 그럴 수 있느냐 할 때는 그저 뺨을 후려갈기는 거예요. '요놈의 간나야' (웃음) 그러면 그 아버지가 어떡하겠어요? '아버지, 왜 그러우?' 그러겠어요? '이놈의 간나야!' 하며 아버지도 들이쳐야 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이치면 아버지도 들이치고 말아야지. '아버님, 어머님, 조금 기다리십시오' 이러면 그 판세가 다 깨지는 거예요. 그 집안이 돼먹지 않은 집안이라 이거지요. 아이고, 매맞고 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분들을 말리지 못하는 아버지가 또 딸을 때리면 그 아버지가 된 아버지요, 나쁜 아버지요, 좋은 아버지요? 자기 딸에게는 안 좋은 아버지가 될는지 모르지만 부모에게는 응당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천도를 세우기 위해서는 부모 앞에 불효하는 자식은 쳐서라도 가계를 세워야 할 전통이 있는 거예요. 그런 역설적인 법도 있다는 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보다 위하여야 할 할아버지이기 때문이에요. 나도 위하고 있고, 너도 위해야 할 텐데…. 그런 의미에서 위하지 못한 것을 꾸짖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 말은 무엇이냐? 보다 위함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할아버지가 위해서 살았다면, 그 가정에서 제일 위해야 할 할아버지라는 거예요. 위하는 생활을 했다면 그 할아버지가 제일 챔피언이라는 거예요. 그는 오랫동안 위하면서 살아온 분이기 때문에 먼저 높여야 할 도리를 세우는 것이 천지의 이치입니다.

자식이 부모 앞에 불효하더라도 나라에 대해 충성하는데 그 부모가 충신된 자식에게 '네가 충신이 된 것은 칭찬할 만하지만 나에게 불효한 것은 용서 못 해!' 한다면 그런 부모의 권고와 주장이 통할 수 있어요? 통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왜? 충신 될 수 있는 길이 부모가 어머니 아버지 입장에서 책임할 수 있는 도리의 길보다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수많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니 그 고통이 얼마나 많겠느냐 이겁니다. 비교가 안 돼요. 보다 위해야 되는 범위가 넓고, 보다 높을 수 있는 분과 넓은 범위에서 박자를 맞춰야 하고, 높고 낮은 범위의 박자를 맞춰야 하는 것이 가정을 중심삼은 어머니 아버지 자식 관계의 그 환경보다도 더 크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 크고, 더 넓고, 더 높고, 더 깊기 때문에 이런 입장에서 위하는 양이라든가 수난이라든가 그 어려움이 얼마나 많겠느냐?

이렇게 볼 때, 자기 집을 박차고 나가 가지고 충신된 그 자식 앞에 선 부모도 지난날을 생각할 때 자식에게 나라를 위해서 가라고 가르쳐 주지 못한 잘못을 놓고 자기 스스로를 자책해야 된다는 거예요. 가정을 버리더라도 나라를 위해 가야 되고, 처자를 버리고라도 나라를 위해서 가야 된다고 교육하지 못하고 권고하지 못한 자신들을 책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해돼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