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집: 섭리의 방향 1963년 08월 1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6 Search Speeches

소원성취와 목적성취" 하나

그러면,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들은 태어나서 보니 지금 때가 20세기 후반기에 있다 이거예요, 나서 보니. 오늘날 세계의 사조가 이렇게 돼 있고, 과학 문명이 발달해서 자유의 천지를 꿈꿀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몇천 년 전의 사조로 보게 되면 이것은 꿈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인 현상과 시대적인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섭리적인 뜻 앞에….

이것을 오늘날 우리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면, 여러분들이 그러한 관을 가지고 끌고 나왔던 하나님을 만나서, 혹은 그런 역사적인 전부를 묶을 수 있는 어떤 역사적인 대표자를 만나서 여러분이 배운 일도 없고 알지도 못 해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막연하게 알 수 있는 하나의 추측만이…. 남북을 향해 있는 지남철이 때와 환경은 변하더라도 그 방향은 변하지 않는 거와 마찬가지로 방향의 한 지침과 같은 본질성이 우리에게 개입되어 있나니, 그것이 여러분의 양심이예요, 양심. 순수한 양심이라구요. 사심을 빼놓은 양심이다 이겁니다.

그것은 천만 년의 거리에 있고 몇억만 년 세월의 거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축소해 가지고 불과 2미터 이내나, 혹은 조그마한 몇 센티미터 이내의 나침판이라도 침의 방향과 평형입니다. 이렇게 그은 줄과 이 줄과는 평형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러한 방향을 취하는 것이 여러분의 양심이다 이거예요.

인심은 천심이라고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양심에 호소하는 세계, 양심에 호소하던 그 목적을 달성하는 세계, 양심의 해방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유 천지는 어디에 있을 것이냐? 이것이 섭리적인 견지에서 본 하나님이 지금까지 방향으로 찾아 나온 길이요, 또 섭리의 뜻을 대하는 역사인들과 지금의 우리 시대인들이 찾아가야 될 방향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진정한 양심을 통하여 우러나오는 내 마음에도 양심의 욕망이 있다 이겁니다. 인간세계의 양심은 반드시 소망이 필요합니다. 거기에는 소망이 있어야 되고 어떤 결과가 있어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사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횡적 관계예요. 횡적 관계다 이거예요. 하루하루 생활하는 데는 사정이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는 심정이 필요합니다. 정적 관계.

그리하여 정적인 역사성을 초월해야 됩니다. 내 시대성을 초월해야 된다구요. 오늘만 이게 필요한 게 아니예요, 오늘만 이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거 왜? 국민 정신이 있어 가지고 국민성을 조성하는 것은 역사성을 초월해야 되고 시대성을 넘어가야 됩니다. 그런 민족으로서 그런 국민성을 가진 국민은 시대를 넘고 미래의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3대 조건을 다 이루면 소망이 있을 것이요, 사정이 있을 것이요, 횡적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심정은 역사적 관계예요. 역사성을 넘어간다는 말입니다. 부모한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공적인 이치 앞에 순종하는 이러한 모든 것이 하나다 이거예요.

그런 것을 다 존중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건 사정 가지고 안 됩니다. 단지 심정세계예요. 심정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심정세계요, 사정세계요, 소원세계입니다. 이렇게 보면 틀림없다구요. 그러면 그 심정 세계에서 살고 싶은 그분이 누구냐? (녹음이 잠시 끊김)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심정이니 무슨 사정이니 우리의 소원이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소위 많이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천지창조할 때 그러한 것을 창조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목적관을 성취시킬 수 있는 과정적인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소원이나 소망이라는 것이 없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소원이 있었던 것입니다. 천지창조의 목적이 있는 거예요. 목적이 있는 거예요. 목적이 성취되었다는 것은 소원성취예요. 소원성취와 목적성취는 하나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