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하나되시려는 아버지 1960년 05월 2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6 Search Speeches

하나님을 새로이 인식해야 할 때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찾되 의식(儀式)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말씀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관계의 하나님을 찾았어요. 그러나 동기의 하나님은 몰랐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고 타락 이후에 나타난 관계의 하나님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조들을 어떻게 대했고 타락한 후손은 어떻게 대했다 하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타락하는 것을 막지 못한 하나님의 사정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담 해와를 쫓아낼 수밖에 없었던 동기를 몰랐습니다. 동기를 모르니 해결지을 수가 없습니다.세상일도 그래요. 어떤 문제가 있다 할 때 그 동기부터 알아 가지고 해결지어야 후환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66권을 다 능통해도 성경 가운데 숨어 있는 동기의 하나님과 과정의 하나님과 결과의 하나님을 모르면 소용이 없습니다. 과정의 하나님은 역사노정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4천년 동안 천신만고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나오면서 메시아의 발판을 세우기 위하여 얼마나 애썼습니까? 그것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정의 하나님을 안다 하더라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기를 모르니 확실히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의 하나님은 어떨 것이냐? 어떻게 심판할 것이냐?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의 심정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기뻐하겠다구요? 안 됩니다. 동기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동기를 거치고 과정을 거쳐서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과학의 현상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예요. 천리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고 하나님의 법도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돌연변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없다는 거예요. 질서적입니다. 동기를 중심삼고 원리 원칙적인 과정을 거쳐서 실체적인 목적체가 형성되는 세계가 창조이념세계입니다. 여러분, 성공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굳은 각오없이 성공합디까? 마음의 동기를 중심삼고 환경을 개척하고 변함없이 그것을 밀고 나가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 일개인이 성공하는 데도 그렇거늘 대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이루시는데 그렇지 않겠습니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적인 하나님말고 창조적인 하나님을 찾아보았습니까? 이 시대에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말고 창조의 동기를 가졌던 하나님, 심판받아야 할 세계를 놓고 섭리하는 하나님말고, 심판한 후에 모든 인류를 품고 영광 가운데 만민과 더불어 기쁨과 행복으로 사셔야 할 하나님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다. 한 사람이 성공하는 데 있어서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과거도 천리원칙과 그 원천이 같아야만 그것이 역사적인 전통으로 세워지고, 또 그 사람의 행적을 역사와 더불어 미래까지 자랑할 수 있지, 그 동기에서 탈선할 때는 어느 시기에 가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뇨. 동기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그 동기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되겠느뇨. 타락한 입장에 머물러 있는 우리를 하나님은 어떻게 대해 나오셨느뇨. 하나님은 역사과정에서 타락되어 있는 우리를 동기의 심정을 가지고 대해 주셨고, 미래의 심정을 가지고 대해 주셨습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하나님을 몰랐으나 하나님은 인간들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6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간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있으나 하나님은 창조당시부터 인간을 아들딸로 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천리법도를 세웠기에, 이 피조세계를 깨뜨려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깨진 이것을 다시 붙이고자 하는 것이 구원섭리입니다. 구멍이 뚫어지고 깨어진 것을 때워야 된단 말입니다. 때우는 데는 동기로부터 과정을 거쳐 목적하던 바의 완결체로서 인연을 맺어 때워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온 우주 피조만상 앞에 완성품이라 내세울 수 없습니다. 이치가 그렇잖아요?

우리는 재인식해야 되겠습니다. 재각성해야 되겠습니다. 더우기나 청년들은 단단한 결심을 해야 되겠습니다. 역사노정에서 우리는 싸워서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종교의 길을 가고 있는 여러분은 무엇인가에 이용당하고 있구나 하고 느껴 보았습니까? 여기서 외치는 사람은 그것을 절절히 느껴 보았습니다. 내가 오늘 하나님에게 이용당하고 있느냐? 인간에게 이용당하고 있느냐? 교파에게 이용당하고 있느냐? 역사 앞에 이용당하고 있느냐? 세워진 어떠한 신학체계에 이용당하고 있느냐? 어느것이냐? 해명해야 됩니다. 이것을 해명해 놓은 책자를 나는 못 보았습니다. 이것을 해명하기 위하여 울부짖는 어떠한 학자도 못 만났습니다.

이 민족은 세상적으로는 세계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소망의 조건이 하나도 없는 처량하고 불쌍한 민족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계가 몰각(沒覺)된 자리에서 잠들어 있는 이때에 우리 민족은 재각성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재감정하고, 시대를 재감정하고, 신앙을 재감정하여 하나님을 찾아 나가야 되겠습니다.

사람이나 어떠한 기관이나 교파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은 망할 수 있으되 하나님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인간세계의 어떤 욕망을 걸고 나오는 것에 이용당하면 망하지만, 세상에서 몰리고 땅에서 배척받아도 하늘에게 이용당하면 망하는 것 같아도 망하지 않습니다. 뜻있는 청년들이라면 어느 것을 취할 것인가 냉철히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때에는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도 비판 해봐야 될 것입니다. 그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