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집: 뜻 앞에 설 수 있는 최후의 승리자 1965년 01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9 Search Speeches

최후의 승리자"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이 사람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 민족 앞에 사무친 한이 많아도 참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무골충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뼈 없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30여 년의 생애를 참으셨던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 이후 2천년간이나 참으시며 뜻을 이루기 위한 터전과 때를 마련하기 위한 공고한 토대를 닦기에 노심초사하시는 것이 복귀의 노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는 것입니다. '태풍아 불어라, 설한풍아 불어라, 동삼삭아 와라' 하며 참는 거예요. 그런 것들은 한 때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가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선생님의 책임이 무엇인가? 몰리고 쫓김받을 때, 감옥에 들어갈 때, 이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될 것이냐? 세계 인류를 위해 맞고 세계의 고난을 전부 끌어다가 섬멸해야 합니다. '아무려면 세계의 고난 길을 개척해 나가는데 이만한 어려움이 없을소냐? 하며 고난을 오히려 당연시했습니다. 내가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복귀섭리역사는 필시 그런 자리에서 결정을 짓고 한 페이지를 넘겨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복귀섭리의 역사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길을 가려 했고, 또 그런 사람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창설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에 모인 젊은 남녀들은 눈을 감더라도 이 지구와 천주를 투시할 수 있고 감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남루한 거지 모양의 옷을 입어 모습이 초라할망정, 생활이 비참할망정, 그 생활을 밟고 올라서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호화찬란하게 살고 있는 백악관 꼭대기도 누를 수 있는 마음까지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때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하나님도 심판의 한 때를 바라보고 공의의 법도를 세위 나오십니다. 그러니 오늘날 여러분도 정의에 입각한 자아를 다짐하고 역사적인 공고한 발판을 닦기 위해 누구에게도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선조 아브라함이나 모세에게도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과 모세까지도 내 뒤에 서시오' 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 앞에 하나님이 통사정을 안 하시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역사적인 최후의 승리자, 섭리 앞에 설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런 기반을 닦지 못했기에 그들의 책임까지 지고 30여 년의 생애 노정을 허덕이며 살다 가셨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는 여러분들은 이 민족을 바라볼 때 남의 민족 바라보듯 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은 남의 나라가 아닙니다. 이 땅은 남의 땅이 아니예요. 이 세계가 여러분의 것이요, 여러분의 땅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땅을 잘 관리해서 앞으로 이루어질 세계적인 나라 앞에 잘 상속하고, 그 나라에 알맞는 백성이 되고, 그 나라에 알맞는, 하나님이 세우신 뜻을 대신할 수 있는 주권을 세워 세계를 통일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바쳐 드려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됩니다.

수만은 국가가 전부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본래의 책임인데도 불구하고 개인은 개인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민족은 민족대로, 국가는 국가대로 각각 다른 뜻을 세워 놓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의 뜻보다, 가정의 뜻보다, 민족이나 국가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원칙이기 때문에 그 뜻 앞에 전부다 심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적인 뜻을 세워야 할 천지 해원의 한 날이 우리 앞에 다가오는 이 때에 해원성사의 선봉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픔과 슬픔을 느끼고, 하나님의 가슴에 사무친 원한의 심정에 들어가서 '당신이 눈물 흘리신 사정과 당신의 마음속에 쌓여 있는 원한의 심정이 이것이 아닙니까? 그것을 제가 알아 위로하오니 푸시옵소서' 할 때, 하나님께서 '오냐, 네 아들딸아 네가 그것을 알아주니 고맙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또 역사상에 이렇게 하나님을 위로해 드린 최후의 승리자가 나왔습니까? 안 나왔습니다. 안 나왔어요.

그래서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시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명을 하기 위해 재림주님이 오시는 것이지, 영광된 것만을 부르짖기 위해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명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아들로서의 효성을 다하고 하나님의 공인을 받아 충신의 명분을 갖춘 다음에야 비로소 영광의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과 성신이 무슨 일을 해왔습니까? 죄인들 찾아가서 그들의 똥걸레 빨아 주는 식의 일을 해왔습니다. 예수님과 성신이 죄인을 좋아해서 그런 것입니까? 죄인의 뒤치다꺼리나 하게요. 얼마나 비참합니까? 죄와는 인연이 없고 상관도 없는 예수님과 성신이 어찌하여 죄와 인연을 맺어 뒤넘이치게 되었느냐? 아버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땅 위에 사는 자식들이 다 죄와 인연을 맺었으니 할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죄를 탕감시켜 주고 용서해 주실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왜 그런 일을 해야 되느냐는 것입니다. 원통하고 분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