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집: 종족적 메시아는 예수님의 대신자 1993년 10월 08일, 한국 제주국제연수원 Page #96 Search Speeches

세계적인 차원의 주체적 입장- 서야

왜 이런 것을 선생님이 상세히 말하느냐? 굳은 결심을 하고 단결하여 광양에서 40년을 지내고 도착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서도 '우리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바라는 나라를 40년 이상 고생을 해서라도 찾아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40년 고생한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한 것이 문제라구요. 나라를 찾기 위해서 40년 이상 수고했다면 가나안 땅에서 나라를 세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주변의 가나안 7족의 습관성을 취해서 잡다한 우상을 숭배했던 것입니다. 전통적 정신에 어울리지 않는 우상 숭배를 하면서 평범하게 되어 버린 거예요. 그러므로 나라를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의 가정을 생각하고 자녀를 생각하는 입장으로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해와, 여자, 어머니의 눈물로써…. 아버지가 그것을 알고 있어도 수습할 수가 없습니다. 일해서 그 실적을 갖고 일가를 먹일 수가 없는 입장에 서 있던 남편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말려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것은 딱 타락한 상태와 같은 관계로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지금 통일교회는 애급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구의 애급이라구요. 사탄적인 주관권, 세계적 패권을 가진 그 주관권에 있기 때문에 다시 이집트를 나가는 것과 같이 이 지상을 나가 이상 국가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에 의해서 그러한 길을 가야 됩니다. 예수님의 40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40년간에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남아 있다구요. 그래서 선생님을 중심삼고 40년간의 광야노정, 기독교로부터 쫓겨나서 광야노정을 간 것입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입니다. 40일 금식을 했다구요. 그러한 40일이 40년으로 연장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급해서 광야노정을 간 거와 딱 마찬가지의 40년간 광야노정을 거쳐 가나안 땅에 상륙했지만 우리 때와 그때는 시대가 달라요. 그때는 민족 시대예요. 국가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시대는 세계 시대입니다. 국가를 능가해 세계적인 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라고 하는 것이 따로 없어요.

전세계가 광야고, 전세계가 애급입니다. 그 이집트 가운데에 있으면서 아무리 애급의 힘이 크더라도 그것을 타고 넘어 주체성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 차원에 있어서 플러스, 주체, 환경 가운데 주체적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 전체가 반대했지요? 통일교회에 간다고 해서 부모가 반대했지요? 반대한다구요. 같이 있으면 좋은데 왜 그러한 광야,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곳으로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탕감복귀 원칙에 의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40년간의 광야노정을 지나 도착해서, 이 세계와 싸워 원리 원칙의 기준에 있어서 탕감복귀하여 사탄권의 모든 패권 기준을 능가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 기준이 아닙니다. 세계 기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