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집: 어찌하십니까 1972년 08월 13일, 한국 청평수련소 Page #114 Search Speeches

자기의 일체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주장하고자 하신 예수

그렇지만 최후에 가서는, 조정도 절충도 통할 수 없는 완전한 뜻의 고빗길에서는, 용납도 절충도 타협도 성립될 수 없는 최후의 순간에 가서는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거기서는 내 뜻을 부정하고 아버지의 뜻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 예수의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망해 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뒤에 놓고, 지금까지 4천년의 하나님의 수고의 역사가 일조일석에 무너지게 하는 유대교를 뒤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 가며 담판 기도하던 예수의 마음은 우선 인간편의 사정을 다 들어주고 싶고, 인간을 대표해 가지고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을 다 가지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하나 하나 내용을 들어 기도하던 그 시간은 자기 선조들이 잘못한 역사를 들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통고하는 시간이요, 또 현재의 이스라엘 민족이 담당한 책임을 못 하는 자리를 바라보며 그 잘못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그 내정을 살피고 심히 아픔을 느끼면서 하나님 앞에 통고하는 시간이 아니었겠느냐. 이렇게 된 모든 사정을 알기에 그는 그 뜻을 대해 주고 싶고 알아주고 싶었지만 최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결정권을 바라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을 찾아왔던 예수는 메시아로서, 만국과 만민을 구해야 할 사명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에 서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담판적인 진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자리가 얼마나 심각한 자리였겠습니까?

그 자리에 섰던 예수에게는 나는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나는 어찌해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4천년 동안 수고해 찾으신 유대교,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미 저끄러진 자리에 서 가지고 중심적인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책임을 지고 왔지만 이제 책임할 수 없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나는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 마음세계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참기 어려운 고충 가운데 신음하였던 예수인 것을 우리는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내정을 붙안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그 사연이 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방안을 모색하고 싶은 마음이 두터웠던 예수는 하나님 앞에‘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거예요. 그 자리가 얼마나 괴로운 자리요, 얼마나 심각한 자리였겠느냐? 그러나 그것을 그 당시의 제자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간 위치에 있었던 메시아로서 '나는 어찌합니까?'라고 한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나 자신을 살피지 마옵소서. 나보다 당신은 어찌하십니까? ’라고 한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예수는 자기 사정을 논의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입장을 제쳐 두고 '당신의 사정을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내가 온 보람이요, 나를 보내신 당신의 사정이 아니겠느냐' 하는 입장에서 서슴지 않고 자기 일체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만을 주장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심정적 내연이 하나님과 예수의 심정세계에 연결되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예수가 '나는 망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로 다시 새로운 이스라엘을 창건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으로 하여금 재차 결의하도록 자극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다시 말하면, 죽는 예수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결의를 하도록 자극시킨 동기가 거기서부터 생겨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심각한 자리에서 자신의 문제 보다도‘하나님은 어찌하십니까? ’하는 그러한 내정에 부딪쳐 가지고 자기 일체를 부정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이 지상에서 제2차로 승리적 터전이 된 기독교 역사의 새로운 출발의 기원을 이루어 놓을 수 있었던 동기가 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당시의 예수 자신의 마음에 어떠한 것이 스쳐 갔을 것이냐? 자기 가정에 대한 문제도 스쳐갔을 것이고, 자기 종족에 대한 문제도 스쳐갔을 것이고, 자기 민족에 대한 문제, 혹은 자기 국가에 대한 문제도 스쳐갔을 것이 아니냐. 내 종족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도 담판 기도의 내용이 되었을 것이요, 내 민족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도 담판 기도의 내용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종족이 망하더라도 민족이 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아는 예수에게는 자기 종족을 다 쓸어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민족을 세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