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심정의 해원을 완성하려는 복귀역사 1960년 04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6 Search Speeches

심정을 온전히 토로하지 못한 예수님

끝날이 되어 오니 세계는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그렇잖아요? 두 갈래로 갈라져 접선되고 있습니다. 접선은 일선에서 됩니다. 지금까지는 함께 나오다가 이제는 맞섰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함께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늘편이 사탄편과 어깨를 겨누고 나왔지만 언제까지나 사탄과 어깨를 겨누고 나와서는 안 되겠기에 맞서는 것입니다. 이러한 투쟁역사가1차 대전, 2차 대전으로 전개되었고, 3차 대전형으로 전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판가리를 지어야 되기 때문에 맞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딱 맞세워 놓았습니다. 하나는 유심(唯心)이요 하나는 유물(唯物), 하나는 영적이요 하나는 물질적입니다.

그러면 앞으로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가 될 것인가. 공산주의를 삼켜 버릴 수 있는 심정적인 이념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세계가 어떤 세계뇨? 천주주의 세계입니다. 이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제창하는 말이요, 예수가 고대하는 말입니다. 예수주의는 무엇이뇨. 예수는 어떤 분으로 오시느뇨. 타락하지 않은 부모가 이 땅 위에 없으니,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참된 부모를 잃어버렸으니 그 잃어버린 부모를 다시 세우는 데, 그분이 참부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제 오시는 그 부모를 모시기 위해 그 부모의 약속을 중심삼고 가던 걸음을 전부 돌이켜야 합니다. 다 버리고 가야 됩니다. 버림받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주님 예수님은 어떠했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구주인 모세는 어떠했으며, 가정적 구주인 야곱은 어떠했으며, 개인적 구주인 아브라함은 어떠하였는가. 노아는 어떻게 되었으며 아담 해와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알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머리를 싸매고 헤매는 도의 길입니다. 인생의 근본문제가 어디에서 해결되는지 아십니까? 오늘날의 과학문명을 통하여 이루어진 이 세계관을 잘 설명하는 데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실증적인 논리를 세우고 실증적인 가치를 논하는 데서 인생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면 잃어버린 곳에 가야 찾으니 그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는 성경말씀만을 통하여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성경 말씀의 내막에 숨겨져 있는 골수의 심정을 통하여 돌아가야 됩니다. 이것이 도인들이 찾아가야 할 길입니다.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예수의 심정을 통해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 예수는 어떠한 예수뇨. 4복음에 말씀하신 그 예수로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너무나 미진하고 부족합니다. 말씀을 하시던 예수의 배후, 말하고 싶어도 나타내지 못했던 그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혈혈단신 혼자서라도 로마를 정복하려는 심정을 품고 바라보던 예수의 가슴에는 사무친 원한의 심정이, 퍼붓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는 못했습니다.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예수가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열 두 제자 혹은 몇 천명의 무리를 끌고 다니면서 사회의 반역자로, 시대의 반역자로 몰려야 하는 처량한 예수가 아닙니다. 만일 예수가 세계적인 반역자로 몰리는 자리에 갔던들, 온 세계가 동원하여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자리에 나갔던들 예수는 안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뒷골목을 걸으면서, 이 골목에서 쫓기면 저 골목으로 피해 다니던 처지에서 그 말씀에 예수님의 이념과 심정이 온전히 다 토로되어 있어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것 가지고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이해할 수 있으되 말하고 싶어도 말 못하신 예수의 은밀한 심정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심정을 알기 위해 '세상아 잘 있거라' 하며 성경의 말씀과 더불어 복귀노정을 더듬어 올라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복귀섭리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예수를 지나, 선지자를 지나, 아브라함을 지나, 노아를 지나 아담에 이르러 그 아담의 타락한 내력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우주 창조의 시발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는지도 모르는 채 가고 있고, 가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가고 있는 처량한 모습들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광야입니다. 황무지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허덕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는 광야와 같은 천지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갈 길을 못 찾아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그들의 갈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60만 대중이 단결하여 죽으나 사나 모세를 심정적인 주체로서 모시고 나갈 때는 그들의 가는 길이 만사형통하였으나, 그 심정의 인연에서 벗어나게 될 때는 멸망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전세계 기독교가 세계적인 광야노정에 머물러 있는 이때,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해야 될 것이뇨? '세계적인 지도자여, 오시옵소서. 세계적인 선각자여, 오시옵소서. 진리가 없어 황무지와 같은 이 동산 위에 민족을 사랑하고 당신의 아들딸을 지켜줄 수 있는 참된 주인이 없사오니, 이 땅 위에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보내 주시옵소서' 하며 애달파하며 기도하는 무리가 나와야 되겠습니다.